[교회의 언어] 헤렘, 전멸 성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과 이민족들 간의 전쟁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이때, 전쟁 과정의 모든 것들을 예외 없이 하느님께 ‘완전 봉헌물’로 바친다는 내용은 우리를 무척 당황스럽게 합니다.(민수 21,2; 신명 2,34; 여호 10,40 등) 이 잔혹한 폭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고대 근동의 사고에서 전쟁은 신들의 전쟁의 연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여겨 모든 전리품과 포로를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하지만 ‘전멸’로 번역되는 ‘헤렘’이 실제 일어났다는 고고학적 발굴이나 문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헤렘은 종교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렘의 동사원형인 하람의 뜻은 ‘금지하다’인데, 이는 (거룩하므로) ‘세속적 사용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전쟁’에 세속적인 마음이나 행위는 끼어들 수 없습니다. ‘헤렘’은 인간의 편에서 사심 없이 순결하고 철저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믿음을 두겠다는 응답이며 다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전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악과의 (육적, 영적) 전쟁을 치르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삶을 참된 평화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입니다. [2025년 6월 29일(다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교황 주일) 가톨릭부산 5면, 김병진 바오로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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