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예비자교리.....2006.5.12.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3 조회수4,693 추천수0
 

    0. 성가를 부르고 그것을 설명 : ‘가톨릭성가 1번=나는 믿나이다’


    1.  신앙 교육을 진행할 사람의 소개와 인사


    2.  신앙 교리가 이루어지는 본당의 간략한 소개


    3.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여러 가지 이유들

사람은 목적 없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해도 그렇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도 마찬가지이고, 하다 못해 내가 남에게 못할 소리를 해도 그 바탕에는 반드시 우리들 각자가 생각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담고 있는지, 아니면 남들도 인정할 수 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 사람이 따라서 해도 좋은지 그렇지 못한지 판단을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삶 주변의 일들을 우리가 그렇게 구별하기는 합니다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물어도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이 자리는 그저 그렇게 한때의 생각으로 마련된 자리는 아니고, 신앙교육을 위한 장소이고, 신앙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모르셨다면, 이제부터라도 알면 됩니다.


그렇게 신앙인의 길에 들어서겠다고 한 바탕에는 감사할 일도 있을 것이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어떤 배경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불안하게 느껴지는 현실에서 내가 두 발로 서기 위한 삶의 다짐을 확인하고 만들어가고 싶어서 함께 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삶의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마음, 이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의 마음이야 여러 가지 생각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올바른 길을 따라 정화(淨化)시킬 필요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목적에는 제가 말하는 지혜를 들으러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신앙교육을 하게 되는 이 곳, 이 장소가 좋아서 오신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끄는 것은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바꾸어야 할 마음과 생각만을 고집하고 거기에 머물고자 한다면, 우리가 이 장소에 찾아오고 이 시간을 통해서 정말로 얻어야 할 신앙과 믿음이 자리할 공간이 없는 탓이고, 귀중한 시간을 내서 덜 중요한 것을 채우자고 하는 일이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사람으로서 갖는 생각 때문이라면 지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신앙, 우리가 느낄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요소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4.  들어가는 말

성경1)은 크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구분합니다. 그렇게 구별하는 구약성경에 전도서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코헬렛(=전도서) 11,7-12,8>에 나와 있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젊음을 즐겨라 

11,7  정녕 빛은 달콤한 것, 태양을 봄은 눈에 즐겁다. 그렇다, 사람이 많은 햇수를 살게 되어도  8  그 모든 세월 동안 즐겨야 한다. 그러나 어둠의 날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오는 모든 것은 허무일 뿐.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늙음과 죽음 

 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맺음말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금 들려드린 이 글의 겉모양은 인생에서 느끼는 슬픔을 말하며, 이 세상의 삶은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말하는 내용인 듯 합니다.  그러나 코헬렛의 말씀을 통하여 그런 의기소침(意氣銷沈)한 것만을 느끼신다면 여러분의 삶에는 새로운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그 방법을 찾아가자는 것이 이 장소와 이런 신앙교육을 하게된 목적입니다.  여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헛되이 힘을 낭비하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5.  천주교회2)에 대한 소개

여러분이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제(司祭)를 통해서 들으려고 하는, 이 종교와 신앙을 한자를 빌려서 부르면 천주교회, 영어의 표현을 따서 부르면 가톨릭, 창설자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면 그리스도교, 한국에서 가진 특성을 감안해서 부르면 ‘성당’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것에 대한 이름이 이렇게 다양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함께 하는 이 신앙에 대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천주교회는 삶의 바탕을 돌이켜보게 하는 종교입니다.  말로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이  종교에 대해서 들으러 시간을 내어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지루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마음으로나마 바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로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종교라고 이야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려니 이런 말을 쓰는 것 뿐 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대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어렵고 힘들고 불안하게 생각하면 한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은 뭔가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올바른 종교를 찾아오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천주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종교나 신앙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믿음직한 종교입니다.


***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 첨가.....


이 천주교회의 기원은 서남 아시아의 끝자락, 지중해의 동쪽 편에 면하여 있는 이스라엘 땅에서 약 2000년 전에 살았던 예수라고 불리던 인간, 그러나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린 분을 출발점으로 해서 시작한 종교입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창시자가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이 예수처럼 말썽이 많다고 생각했던 대상, 평가도 다양한 인물은 없습니다.  이 말썽이 많았다는 말도 앞서 이야기한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종교’와 같은 의도로 사용합니다.  왜 이 예수가 말썽이 많았는가?  그것은 인간으로서 주어진 한 생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도 제 명(命)에 죽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나이 33살에, 일반 죽음도 아니고 국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십자가 형벌(刑罰)의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난 분을 이야기하는 종교와 종파들은 무지무지하게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함께 부르는 말로서,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참으로 많습니다.


그럼 그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많은 종교들이 그분을 언급하며 그를 시조(始祖)로 생각하는가?  그분은 인간으로 오셨으나,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 특별한 차이점입니다.


천주교회는 세상 만물과 인간의 기원[=출발]을 하느님으로부터 설명합니다.  흔히 과학에서 말하는 주장이나 이론으로 제시하는 것과는 그 출발점을 달리합니다.  ‘그것은 신앙이지, 학문은 아니죠’라고 한다면, 응답에 대한 것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물 가운데는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면서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상당 부분을 신앙이라는 영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 만져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하거나 그런 것에서 절대로 영향받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손바닥 위에 산다는 세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음식을 입에 넣고, 이빨로 몇 번 씹어서 넘기기만 하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다음 단계는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잘 돌아갑니다.  소화시키는 일, 거기서 양분을 뽑아내는 일, 내 몸에 필요한 힘으로 바꾸는 일, 그리고 마지막에 뒤로 내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몰라도 모든 일은 저절로 알아서 됩니다.  이게 정말 저절로 되는 것일까요?  정말로 이렇게 오묘하게 일이 진행되도록 한 그 배경에는 아무런 힘이나 특별한 역할을 하는 대상도 없이 정말로 저절로 되는 일일까요?


이 신앙이라는 것도 인간 사회 주변에, 인간 사회에 영향을 끼치려다보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고, 인간이 쓰는 말로 그 체제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신앙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글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미리 여러분들에게 복선(複線)을 까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알고 싶어해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의 머리로 확인할 수 없는 이상, 그 해결방법이 없는 일들은 분명 있는 법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며, 그분을 이 세상에 낳으신 인간의 어머니는 ‘마리아’였고, 그분을 사람으로 기르신 인간의 아버지는 ‘요셉’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스라엘 부족의 하나인 유다인으로 오신 분이고,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특징을 지니신 분이고, 하느님이면서 인간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할 줄 알았던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1)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눕니다. 가톨릭의 구약성경은 모두 46권이고, 신약성경은 27권, 합계 73권입니다. 개신교에서는 구약성서의 숫자를 39권으로 계산합니다. 희랍어로 쓰여진 7권의 성서를 ‘외경’이라 칭하고 합계에서 제외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66권만을 성서로 인정합니다.


2) 천주교는 영어문자 ‘catholic’의 번역어입니다.  올바른 번역 언어는 ‘가톨릭’이고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갖는 낱말입니다. 그에 비해서 흔히 우리가 알기에 기독교로 칭하는 개신교는 ‘protestant’입니다. 그 의미는 ‘증거하다, 항의하다’는 뜻을 갖습니다.  기독교라는 말은 영어의 ‘Religion of Christ<그리스도교>’의 번역어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따르는 전체 종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칭의 방법으로 설명하자면, 천주교-개신교, 가톨릭-프로테스탄트입니다. ‘구교’-‘신교’로 대립하여 설명하는 방법은 왜곡된 심성을 갖고 표현한 악의(惡意)적인 생각이 깃든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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