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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교회 교리서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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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선물인 기도

2559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2)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 우리의 교만과 우리 자신의 원의라는 고자세에서 하는 가, 아니면 “깊은 곳에서”(시편 130(129),1) 뉘우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가- 겸손한 사람은 드높여진다.(3) 겸손기도의 초석이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릅니다”(로마 8,26). 겸손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인간은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기”(4) 때문이다.
2560 “하느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요한 4,10) 우리가 물을 길으러 가는 우물가, 바로 그곳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놀랍게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시려고 우물가로 나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시고, 마실 물을 달라고 우리에게 청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목말라하신다. 예수님의 청은 우리를 갈망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목마름에서 나온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기도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목말라하기를 갈망하신다.(5)
2561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역설적으로 우리의 청원 기도는 하나의 응답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다. “내 백성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청원 기도는 무상의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며,(6) 외아들의 목마름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찬 응답이다.(7)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다

2607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벌써 기도를 가르치신다.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우리의 기도하느님께 다다르는 길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서 그대로 우리를 받아들이시어, 점차적으로 우리를 성부인도해 가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군중을 뒤돌아보시며, 그들이 구약의 계약을 통하여 이미 기도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에서 출발하여, 다가올 하늘 나라의 새로움에 마음을 열게 하신다. 그다음에 그 새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비유로 알려 주신다. 끝으로, 당신 교회에서 기도의 교사들이 되어야 할 제자들에게는 아버지와 성령에 대해 숨김없이 말씀해 주신다.
2608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마음의 회개를 강조하셨다.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형제화해하여라,(59)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여라,(60) “골방에서”(마태 6,6)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많은 말을 되풀이하지 마라,(61) 기도할 때 마음속으로부터 용서하여라,(62)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늘 나라를 구하여라(63) 하셨다. 이 같은 회개는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께 향하는 것이며, 또 자녀다운 것이다.
2609 이처럼 회개하기로 결심한 마음은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믿음은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을 초월하여 자녀로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믿음사랑하는 아들께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문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찾아라.”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 하고 요구하실 수 있다.(64)
2610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고 아버지의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감사를 드리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르쳐 주신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기도의 힘이 이와 같다. 곧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65)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의 “믿음이 없음”(마르 6,6)과 제자들의 믿음이 약함을(66) 보시고 슬퍼하신 만큼, 로마 사람 백인대장과(67) 가나안 여자의(68) 크나큰 믿음을 목격하시고는 경탄하신다.
2611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믿음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다.(69)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계획에 협력하려는 마음을 지니라고 제자들에게 촉구하신다.(70)
2612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므로”(마르 1,15),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음을 가질 것과, 깨어 있을 것을 호소하신다. 제자는 기도 중에, 비천하게 사람이 되신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을 기억하고,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재림희망하면서, ‘언제나 계시며, 오시는 주님’을 깨어 기다린다.(71) 스승과 일치하여 바치는 제자들의 기도는 하나의 싸움이다. 깨어 기도함으로써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72)
2613 루카 성인기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세 가지 비유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첫 번째 비유, 곧 “벗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의 비유”는(73)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라고 촉구한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고, 특히 모든 선물을 가지고 계시성령을 주실 것이다.
두 번째 비유, 곧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는(74) 기도의 특성 중 하나에 중점을 둔 것으로, 믿음에 따르는 인내를 가지고서, “지치지 말고 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세 번째 비유, 곧 “바리사이와 세리의 예화”는(75) 기도하는 마음의 겸손에 관한 것이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회는 이 기도를 끊임없이 자신의 기도로 삼아 왔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yrie eleison!)
2614 예수님께서 성부께 드리신 기도신비를 제자들에게 숨김없이 밝혀 주신 것은, 당신께서 영광스러운 인성을 지닌 채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신 그때에 제자들이 드리는 기도와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기도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다.(76)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생명이시기”(요한 14,6)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제자들은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믿음사랑 안에서 그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게 되며,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안에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이 새 계약에 따라서, 우리의 청원이 허락되리라는 확신은 예수님의 기도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77)
2615 더 나아가서, 우리의 기도예수님의 기도와 결합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6-17). 기도기도드리는 상황의 이 새로움은 예수님의 고별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78) 성령과 하나 되어 바치는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이루는 사랑친교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4).

교회의 전례

2655 교회의 성사 전례에서, 구원신비를 선포하고 구현하며 전달하는 그리스도성령의 사명은, 기도하는 마음 안에 계속되고 있다. 영성교부들은 때때로 마음을 제대비유한다. 기도를 통하여 신자는,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과 그 후에, 그 전례를 내면화하고 그 전례에 동화된다. “골방에서”(마태 6,(6) 기도하더라도, 기도는 언제나 교회기도이며, 거룩하신 삼위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6)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

2665 하느님 말씀과 전례 거행으로 양육되는 교회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주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교회기도는 그 누구보다도 성부께 드리는 것이지만, 기도는, 전례의 모든 전통 안에서,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문들을 포함하고 있다. 교회기도 안에 도입된 일부 시편들과 신약 성경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호칭들로써 그리스도를 부르며 바치는 기도를 우리 입으로 외우며 마음에 새기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말씀, 주님, 구세주, 하느님의 어린 양, 임금님, 사랑하는 아들, 동정녀의 아들, 착한 목자, 우리의 생명, 우리의 빛, 우리의 희망, 우리의 부활, 사람들의 친구.
2666 그러나 이 모든 호칭들을 집약하는 이름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 강생하실 때 받으신 이름, 곧 ‘예수’라는 이름이다. 하느님의 이름은 인간의 입술에 담을 수 없지만,(11) 하느님의 ‘말씀’은,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그 이름을 건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름을 ‘예수’, ‘야훼(YHWH)는 구원하신다.’라고(12)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라는 이름은 모든 것, 곧 하느님인간, 창조와 구원의 경륜 전부를 내포한다. ‘예수님’을 부르면서 기도드리는 것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요,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을 부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그 이름이 의미하는 현존을 내포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으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맞이하는 것이다.(13)
2667 이렇게 지극히 단순한 신앙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동방과 서방의 기도 전통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시나이 산과 시리아와 아토스 산의 영성가들을 통하여 전해 내려온 가장 흔한 기도문은,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부르는 기도이다. 이 기도문은 필리피서 2,6-11의 그리스도 찬미가세리의 호소와 빛을 달라고 애원하는 걸인의 호소를(14) 연결시킨 것이다. 이 기도를 통하여, 인간의 비참과 구세주자비에 마음이 열리게 된다.
2668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은 늘 기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길이다. 겸손되이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으로 자주 되풀이한다면, 이 기도는 “말을 많이 함”(마태 6,7)으로 흩어져 버리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게 한다.”(15)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어느 때라도’ 가능한 것이니, 그것은 다른 일에 덧붙여서 하는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단 하나의 중요한 일로서, 하느님사랑하는 일,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행동에 생명을 불어넣고 변화시키는 일이다.
2669 교회의 기도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듯이, 그분의 성심공경하고 존경한다. 교회기도인간이 되신 ‘말씀’을 흠숭하며,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죄 때문에 창에 찔리신 예수 성심 또한 흠숭한다. 그리스도교 기도구세주를 따라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총독 관저에서 골고타와 무덤에 이르는 14처는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 세상구원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한 걸음씩 따라가는 것이다.

기도의 봉사자들

2685 그리스도인의 가정기도를 가르치는 첫째 장소이다. 혼인성사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교회’이다. 바로 거기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교회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가정에서 날마다 바치는 기도가, 성령께서 끊임없이 일깨워 주시는 교회의 살아 있는 기억을 처음으로 증언해 주는 것이다.
2686 서품된 봉사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신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의무를 지고 있다. 착한 목자의 종들인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기도가 솟아나는 샘으로, 곧 하느님 말씀, 전례, 하느님을 향한 삶, 구체적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오늘’로(36) 인도하기 위하여 서품된 사람들이다.
2687 수많은 수도자들이 그들의 전 생애를 기도하는 데에 바쳤다. 이집트 광야에서, 많은 은수자들과 남녀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백성을 위해 전구하고자 일생을 보냈다. 봉헌 생활기도하지 않고는 유지되거나 확산되지 못한다. 기도교회 안에서 관상 생활과 영성 생활이 솟아나는 원천 중 하나이다.
2688 어린이들과 젊은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교리 교육의 목표는 개인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전례 기도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현재 상황과 연결시키며, 또한 그 말씀을 항상 내면화하여 새로운 삶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에 있다. 교리 교육은 대중 신심을 잘 검토하여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37) 기본적인 기도문을 암기시키는 것은 기도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기초를 닦는 일이다. 그러나 그 기도문의 의미를 음미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38)
2689 ‘기도 모임’, 또는 ‘기도 학교’가 이 시대에 그리스도교기도의 진정한 원천에서 물을 길어 낸다면, 교회 안에서 기도쇄신시키는 징표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친교에 대한 열망은 교회 안에 참다운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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