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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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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恩寵論
라틴어
De gratia
1. 개념 :
은총
은 “높은 이로부터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
”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정의
하고 있는데 이는
구약성서
의 기본사상과 들어맞는 말이다(출애 33:12).
은총
은 분배정의와는 관계없이 순수한 호의와
자비
로서 거저 베풀어진 혜택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세사
(救世史)를 이루는
계시
와 결약(結約) 덕분에 충실과 의리에 관한 개념도 포함하게 되었다.
구약성서
에 따르면,
하느님
께서는 결약을 지키는 분이시므로
인간
들을 그저 내버려 두지도 않으신다. 또한 그분은 충실하신 분이시기에 일단
은총
을 베푸시면 쉽게 거두지도 않으신다. 그러므로
은총
은 견고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
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 역본에서 말하는 ‘카리스’(charis)란 단어는 원래 아름다운 자태를 의미했지만
성서
의 사상과 부합하여 호의,
자비
그리고 혜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약성서
, 특히
바울로
서간
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를 중심으로 하여
구약성서
의 사상을 이어 받고 재평가하여
은총
이란 단어를 대단히 즐겨 쓰고 있다. 이제
은총
은 창조사업을 비롯하여 영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께서
인간
을 위하여 해내신 묘한 일들이며,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께서 당신자신을
인간
에게 내놓으신 행위이다.
하느님
께서는 당신이
계시
는 그대로를
계시
하셨기에
은총
은
인간
에 대한
자비
로우신 태도나 호의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놓으시는 것을 뜻한다.
은총은 선물이니만큼 어떤 강요도 없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따라서
은총
은
하느님
께서 당신의 상대방으로 삼으신
인간
의 반응과 관게없는
하느님
의 일방적인 행위로 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은총
에는 증여의 성격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은총
은 당사자의 일방이 자기 재산을 무상으로 상대분에게 줄 의사를 표시하고 또한 상대방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
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은총
문제에 있어서는 그 차원과 성격은 다를지라도
하느님
의 입장과 동시에
인간
의 입장도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계시
되신
하느님
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
’이시기 때문이다.
한편
신약성서
전체는 ‘은총사’라고 할 수 있다.
은총
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마르코
나
마태오
복음사가
는
바울로
못지않게
하느님
의 계획 뿐 아니라
인간
이 누릴
지복직관
(至福直觀)으로 완성될 신인상봉을 묘사해 주고 있다.
바울로
이외의
신약성서
작가들도
구약성서
에서 이어받은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신인(神人)상봉을 그리스도적인 상봉이라고
고백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하였다. 즉
하느님
을 아버지로
고백
하는
신앙
,
죄인
들을 환영하시는 예수의 모습, 자기 자신만
의지
하려는 자들을 단죄하시는 최후
심판
자에 관한 묘사 등은
은총
의
신비
를 암시하면서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역할을 대변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제
은총
이 있다면 다만 그리스도의
은총
이 있을 뿐이다. 나아가
교회
도
계시
의 풍부한 내용을
묵상
하면서
은총
의
신비
를 나름대로 표현했고 또 그 표현들을 정리하면서 이에 관한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동방교회
교부
들은
은총
을 ‘신성에의 참여’(2베드 1:4)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하느님
의 현존과 ‘인간의
신화
’(神化)로 보았다. 그리고 ‘은총의 학자’로 불려지는 성
아우구스티노
는
하느님
을 모시는
인간
의 입장에서
은총
의
신비
를 묘사했으며, 성
토마스
는 인식과
사랑
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은총
의
신비
, 즉 신인상봉의
신비
를 유추적으로나마 설명하려 하였다. 최근에 와서 현대교회는, 죄악에서 해방되어(로마 6:18-22) 참된 아드님의 덕분에
하느님
의 자녀답게 사는 새로운
인간
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자유’개념(요한 8:34-36)을 애용하고 있다. 서로 상반되는 체개들은 아니지만
은총
의 종류가 많아졌다는 인상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
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은총
은 단순한 행위이며
하느님
안에서 어떠한 변함도 일으키지 않으나,
시간
속에서
하느님
께 접근하는
인간
의 입장에서 볼 때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므로 부득이
은총
을 구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의
은총
생활에 있어서는
성사
의 역할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나 이 ‘많은
은총
’을 신인 관계 문제 즉
하느님
의 호의와 은혜 그리고
인간
의 반응과 변화를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좋은 실례로 볼 수 있다.
2. ‘아드님’ 안에서의 자녀들 :
은총
은
하느님
께서 당신 자신을
인간
에게 내놓으시는 행위이기에
인간
을 찾아주시는
하느님
(요한 14:23)께서는 전통적인 표현대로 ‘창조되지 않으신
은총
’이라고 한다. 원래
인간
은 죄 문제는 제쳐두고서라도 단순한
인간
자체로도
하느님
을 모실 자격조차 없다. 그러나
하느님
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심으로써 우리가
하느님
을 모실 합당한 자로 만드시고, 또한
하느님
을 모실 소질을 갖게 하셨다. 이 소질은 우리의
인간
성을 다른
본성
으로 변질시키지 않고 인격적인 차원에서
하느님
과의 관계를 가능케 하는 선물이다. 이 기본적 소질과 함께 우리의 영적 기능 -
의지
·
이성
등 - 을 새롭게 하는
향주덕
(向主德)도 선물로 받게 된다. 이 소질과
향주덕
은 전통적인 표현대로 ‘창조된
은총
’이다. 이 창조된
은총
은 우리
인간
안에서 효과를 내시는
하느님
의 현존과 선물의 실재성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창조된
은총
은
하느님
을 모실
선행
조건도 아니고
하느님
과
인간
사이에 쌓인 장벽도 아니다. 단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께서 해내신 필수적인 효과일 따름이다. 따라서 창조된
은총
과 창조되지 않으신
은총
은 서로 분리시킬 수 없으나, 다만
하느님
과
인간
의 입장이 각각 다르므로 그들을 구별 할 따름이다(에페 2:7-10). 흔히 쓰이는 용어인 ‘성화은총’은 창조되지 않으신
은총
- 우리를
성화
시키시는
하느님
- 과 창조된
은총
-
하느님
을 모시는 소질 - 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신학
자는 지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상존은총’이라고도 불리는
성화
은총을 창조된 효과와 동일시하지만, 그들도 의인(義人)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을 부정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소위 ‘조력은총’은 창조된
은총
에 속한다.
은총
은 어려운 인생 고비에서 우리를 구할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매사에, 즉
하느님
을 찾는 순간부터
선행
을 할 때마다
하느님
의 도움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구원
의 무상성을 대변하고 있다.
성부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주셨고 아드님의
죽음
과
부활
로써 우리
구원
을 마련하셨다(로마 5:6-10).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 아드님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
께서 그 아드님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는가?”(로마 8:32) 따라서 모든
은총
생활은
인간
이 되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말씀의
강생
으로 시작된 참된 신인 상봉은
죽음
과
부활
로 완성된다. 아드님은 자신이 취하신
인간
성을 통해서 아버지와 변함없는 부자관계를 유지하시고 신인 간에 다리 역할을 하시는 유일한
중개자
이시다(1디모 2:4-5). 아드님의 몸이 됨으로써 그
인간
성은 근본적으로
성화
되어 우리의
인간
성을 새롭게 하는 모든
은총
의 원천이다. 아드님은
십자가
에서 죽어가는 이 몸을 통해서 아버지의
용서
를
죄인
들에게 베푸셨으며,
부활
을 통하여 그 아드님은
인간
으로서 아버지의
생명
으로 사시고 아버지와 함께
성령
을 보내주신다(사도 2:33).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
인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
로 시작된
신앙
생활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의
죽음
과
부활
에 참여하는 생활이며, 이
신앙
생활은 또한
인간
의
의화
(義化)로 출발한다(로마 4:25). 트리엔트
공의회
의 결의문에 따라(1547년 1월 13일),
의화
는 죄의
용서
와
인간
의 내적인
쇄신
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의
공로
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면서 의롭게 만드신다.
하느님
께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이유는
하느님
의 선언이 당장 효과를 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
께서 우리 죄를 눈감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신다. 비록 죄에 대한 성향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로마 6:12)
용서
를 받은
인간
안에
하느님
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없다.
하느님
과 원수였던
인간
이 이제부터
하느님
의
친구
가 되어(요한 15:14-15,
로마
5:10) 아드님 덕분에 아버지와
화해
되었다(2고린 5:19). 의로우신
하느님
께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기에
하느님
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그 의는 이제 우리의 것이다. 이 의는
하느님
께서 우리 안에서 해내신 초자연적인 효과이며 또한 창조된
은총
이다. 여기서
의화
은총과
성화
은총은 완전히 부합한다. 왜냐하면
하느님
께서 우리를 의인인 동시에
성인
으로 만드시기 때문이다(1고린 6:11, 에페 4:23-24). 사실
바울로
는
로마
서에서
화해
의
신비
를 설명할 때, 유태인들을 상대로 ‘의화’개념을 사용했고, 외교인들을 상대로는
성화
개념을 사용하였다.
이 효과와 더불어 이 효과를 내신
하느님
께서 몸소 의인과 함께 반드시 계신다는 사실은,
성서
가 ‘선사되신
성령
’이란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로마 5:5).
성령
께서 우리 안에
계시
고 활동하시며(로마 8:9-27, 1고린 12:3-13) 우리를
성화
시키신다.
하느님
의 현존은 천주성삼 제3위이신
성령
과 결부되어 있는데 이는 오직
성령
만이 우리 안에 내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부
와
성자
로부터
성령
을 떼어놓을 수가 없기에
하느님
께서는
삼위일체
로 계신다는 뜻이다(요한 14:23).
하느님
께서 몸소 우리 가운데 임하시므로
성서
도 그리스 사상의 속하는 ‘참여’란 개념을 차용하여 우리가
신성
에 참여한다고 표현하고 있다(2베드 1:4). 물론 우리는
하느님
과 하나의 실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부
들의 설명에 따르면 참여란 개념은 절대적인 의존을 뜻하고 있기에 이 개념을
범신론
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신성
에 해당되는 불멸의 참여로 해석되어야 한다.
부활
로써 완성된 이 불멸의 참여가 미리부터 신인결합을 암시하고 있다.
신인관계도 죄의
용서
및 내적
쇄신
과 더불어
하느님
께서 몸소 내주하시는
은총
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원
으로부터
인간
을 창조하시고 살리시기로 결정하시는
하느님
측에서 볼 때 이 신인관계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하느님
께서는
인간
이 비록
죄인
이 되었을망정
인간
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셨다. 그분은 언제나
생명
의
하느님
이시지 멸망의
하느님
이 아니다(에페 1:3-5). 그러나
인간
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신인 관계가 놀라울 만큼 새로워졌다.
하느님
께 거역함으로써 죄의 결과인 벌을 면할 수 없게 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인간
(로마 7:13-25)은 이제 막다른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
인간
은
하느님
의 양자가 되었다. 이 놀라운 신분의 변화는
삼위일체
이신
하느님
께서 하사하신 선물이다. 대내적인 관계 -
성부
,
성자
,
성령
을 서로 맺는 관계 - 로
존재
하시는
삼위일체
의
생명
으로 살게 된 믿는 이들은 바로 이 대내적 관계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파견
되신 독생성자인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이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당신 자신에 대한
신앙
을 요구하셨다. 왜냐하면 우리가 참되신 아드님과 결합되어야만 아버지의 양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
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
의 자녀가 되었다”(갈라 3:26-28). 그리고 이 결합은
성령
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령
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로마 8:9).
성령
께서는 우리를 아드님과 같은 모습으로 만드시며 우리는
성령
에 힘입어
하느님
을 아빠로 부른다(갈라 4:5-7,
로마
8:14-16). 아버지께서는 아드님 안에서
성령
에 의해 우리를 양자로 삼으신다. 이제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하느님
이 아니라, 참 아드님의 아버지이신 천주 성삼 제1위이시다.
‘많은
형제
들의 맏아들’(로마 8:29)이신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당신 몸이
교회
안에 우리를 모으신다.
교회
는 아드님이 현존하시고
성령
께서 우리를 아드님과 결합시키시는 장소이면서
성서
와
성사
를 통해서
용서
와
화해
를 베푸는
은총
의 도구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해석하면서 온 인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
하는
교회
는 원래 신인관계의
성사
이다.
교회
는 무엇보다도
성사
를 통해서, 특히
성사
들의 절정인
성체성사
를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성령
의 능력으로
축성
되고 모인 몸, 그리고 아버지께 드리는 몸이 되게 한다.
3.
은총
론의 제반 문제 :
은총
론은 기묘한 신인 관계를 다루고 있으면서 많은 논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우리는
하느님
의 입장 -
하느님
의
초월
성과 내재성 - 과
인간
의 입장 - 제한성과 무한을 향하는 개방성 - 을 서로 다른 차원에서 검토해야 되며 또한
성서
가 전해 주는
계시
의 내용과
인간
이 얻은 경험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인관계의 표현에 쓰이는 개념들을
제대
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철학
적 배경도 각별히 배려해야 한다. 예컨대 고대에는
하느님
과 모든 피조물을
내포
하는
존재
개념으로 꾸며진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신관이 통용됐지만, 인식 문제조차 재검토하는 칸트의 이후의 시대에는 신을 체험한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
의 역할과 신인 관계를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문예부흥시대부터 특히 성
아우구스티노
의 저서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이유가 있다면, 이는
자유
와
인간
성 개념의 외연 문제를 들 수 있다.
교부
들과 중세기의
신학
자들이
자유
와
인간
성을 다룰 때는 반드시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
과 천당에서 누릴
지복직관
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근대
인간
학에 발달에 따라
신학
자들은
하느님
께로의 소명없는
인간
성 및
은총
을 제거한
인간
성을 구상하기도 했으며, 나아가
원죄
에 의해 무력해진
자유
때문에
인간
은 최후목적을 달성할 수도 없게 된 것과, 부패된
인간
성 때문에
인간
의
의지
와
이성
의 판단이 선과 악을 구별 못할 정도가 된 것을 혼동하였다.
자유
문제를 새롭게 의식하던 근대의
신학
자들은
자유
의 상실과 동시에
은총
의 강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개신교
와
천주교
사이에서 합의문 역할을 했어야 했던 아우크스부르크
신조
(1530년)가 거부되었기에 트리엔트
공의회
는
종교개혁
자들의 지나친 의견을 단죄하면서 전통적인
교리
를 재정리하였다. 그리고
교회
는
원죄
이전과 이후에
은총
의 필요성을 달리 이해하던 바이우스(Baius, 1513~1589)와 얀세니우스(Gornelis Jansenius, 1585~1638)의
이단
적인 사상도 단죄해야 하였다.
교회는 인격에 해당하는
자유
를 부단히 주장해 왔으며, 또한
원죄
나
은총
이
인간
의
자유
를 박탈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왔다. 그리고
인간
이 범하는 죄에 관계없이
구원
에 있어서는 반드시
은총
이 필요하다고 가르쳐 왔다.
교회
는 “은총 없이도
인간
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
을 얻을 수 있다”는 펠라지우스(Pelagius, 360~422년)의 의견을 단죄하는 카르타고
공의회
(418년)의 결의문을 되풀이 하면서
은총
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동시에
은총
이
인간
의
자유
를
구속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꾸준히 가르쳐왔다.
인간
이 감히
하느님
께 반대하지는 못하겠으나
은총
의 성격을
제대
로 이해한다면
하느님
의 전능과
인간
의
자유
를 대립시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
께서 행동하시는 차원과
인간
이 행동하는 차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
을
초월
하시는
하느님
께서는 예정하시는 순간부터
심판
을 내리실 때까지 우리
인간
의
역사
를 한 눈으로
안배
하시므로, 이미
인간
의 행동을 아시고 최후상태를 결정하신다. 따라서
하느님
께서 “우리를 먼저 택하시고
사랑
하셨다”는 예정론이
인간
의
자유
를 파괴하는 기계적인
결정론
으로 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느님
께서는 사전의 모든
인간
에게
구원
을 얻을 수 있게끔 충분한
은총
을 주시고 실제로
구원
받을 사람 - 오직
하느님
만이 아시는 일이지만 - 이 효율적인
은총
을 받았다”고 주장하던 16-17세기의
신학
자들[De Auxiliis, 논쟁의 종지부, 1607년]은 부족한 표현으로나마
은총
의 효율성과
인간
의
자유
를 동시에 사색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쟁점이 되었던
공로
(功勞) 문제를 빠뜨릴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로
를 쌓아
은총
과
구원
을 상으로 얻는다”는 의견은 이미
교회
가 단죄해 온 펠라지우스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업적은
은총
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 받은
은총
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원리에 따라
은총
의 무상성과 실재성을 강조해야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께서는 항상 당신의 선물을 우리의
공로
로 만드신다.
신앙
조차도
은총
의
선행
조건이 될 수 없고 다만
하느님
의
자비
인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
과 이
사랑
은 곧 나의 마음이요 나의
사랑
이다. “내
믿음
이 너를 살렸다”(마르 5:34). (文世華)
[참고문헌] Thomas Aquinas, Summa theol., 1,2 / Billuart, De gratia, Lequette편 III 및 Salmanticenses, Tractatus XIV: De gratia(Cursus theol. IX이하), Paris 1870 / R. Cercia, De gratia Christi ed.3, Paris 1879 / C. Mazzela, De gratia Christi ed. 5, Roma 1905 / J. van den Meersch, De divina gratia Bruges 1924.
출처 : [가톨릭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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