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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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소위 종교 개혁◆ 인쇄

한자 ~宗敎改革
[참조단어] 면죄부의 진상대사

   1.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1483년 독일의 빈농에서 태어나, 20세에 철학,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설에 의하면 1505년 친구죽음을 회상하던 중, 옆의 친구가 벼락으로 급사하자, 성녀 안나에게 수도 생활맹세하고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들어가 2년 만에 수사 신부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비텐베르크의 대학 교수가 되었고, 1512년에는 신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2. 루터와의 논쟁 :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대사령(大赦令 : 베드로 대성전 전대사)이 공포되자, 독일알베르토 대주교가 책임을 맡게 되었고, 당시 명성이 높던 테첼(Tetzel) 신부가 선전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루터는 그를 은근히 시기하였다.

   마침내 1517년 신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관례에 따라, 테첼 신부가 비텐베르크에 오자, 루터는 그를 반박하기 위한 95개조 조항의 논문을 성당 문에 부착하였다. 이때 루터신학자 에크와의 논쟁에서, 교황 수위권공의회 무류성을 거부하였다.

   그 후 논박이 더욱 심해지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오견(誤見)을 정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계속 고집하자, 1520년 교황은 엑수르제(Exsurge)라는 교서를 통해 반성을 촉구하였다. 그래도 루터는 반성은 고사하고 공개 석상에서 교서를 불태우며 교황에 도전하였다.

   결국 이듬해 루터파문(破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루터는 공공연히 교황을 배척하면서 성체, 세례 성사만 제외하고 다른 5개 성사는 폐기하였다. 그리고 다음의 3대 원리를 내세웠다. “사람은 원죄로 완전히 부패되어 자유가 없다. 그리고 구원예수믿음으로만 얻는 것이지, 인간선행, 고행 등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앙의 규범은 성서뿐이다”가 그것이었다.

   3. 교회의 분열 : 그 후 루터는 1525년 26세의 카타리나 폰 보라 수녀결혼하였고, 1546년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때 루터를 따르던 일부 타락한 성직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논쟁들은 소위 종교 개혁과는 무관하다. 그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개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정통 교리를 자신의 임의대로 고치려는 데에 있었다.

   결국 그의 반박은 종교 개혁이라기보다는 종교의 분열을 조장한 셈이다. 그 후 성서자유 해석 결과만 보더라도, 한국에서만도 수백 개의 종파가 난립하고 있다. 이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믿음으로만 구원’을 주장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6)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원죄로 부패해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엉뚱하게도 인간선행을 무시한 결과만 가져왔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