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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심전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7 조회수788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3주간 화요일 - 이심전심

 

한 소심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안 좋은 말도 함부로 못하는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제가 충고를 해 주는데 그 자매가 도리어 저에게 강하게 반박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다음부터는 그 자매에게 무엇을 말할 때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렇게 조심해서 말하게 된 데에는 그 자매의 탓도 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자매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못 하더라도 신부님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부님을 믿는다는 것일 수도 있어요.”

 

듣고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못하면서도 어머니에게는 할 말 못할 말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면 기분이 나빠 사이가 멀어질 수 있어도 어머니와는 그런 말로 사이가 멀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좌 신부로 있을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성당에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찾아오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는 했습니다.

물론 아들 신부를 보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떠나셨던 것처럼 어머니가 인간적인 마음으로 성당까지 자꾸 아들을 찾아오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방에서 전화를 받고 얼굴도 안 보고 어머니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는 마음 안에는 어머니께서 매우 섭섭해 하실 것을 알긴 했지만 곧 이해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만큼 강한 끈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깊은 관계 안에서는 이렇듯 보통 사람들의 관계를 넘어서는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오늘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매우 단호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다른 친척들이야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올 수 있는 일이었지만 성모님은 아마 어머니로서 그들 손에 끌려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주위에 앉아있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곧 어머니요 형제들이라 말합니다.

어머니께서 이 말씀을 들으셨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삼일 밤낮을 찾아 해매 마침내 성전에서 아들을 찾은 어머니께 열두 살 난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어머니께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저와 어머니께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는 십자가 밑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께 요한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여, 저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 찬밥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멀어서 벌어지는 일이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은 어머니를 맨 마지막 자리에 놓았습니다. 그만큼 당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완전한 분이셨기 때문이고 그 사이에 모든 사람을 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받는 어머니는 아들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저와 어머니께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겉보기엔 어머니의 청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어머니만은 그것이 첫 기적을 당신을 위해 해 주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성모님만큼 아버지 뜻을 따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성모님만은 그 의미를 알아들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보이자 오직 제자 가섭만이 그 의미를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만이 통하는 무엇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염화미소 (拈花微笑) 혹은 이심전심 (以心傳心)이라 합니다.

가끔 삶에서 어려움이 닥쳐올 때,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으로 생각 할 수도 있을 때 그 분과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 안에서도 의미를 깨닫고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그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불립문자 (不立文字)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사람들 가운데 제일 마지막 사람인 것처럼 취급할 때가 많았지만 사실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었음을 깨닫고, 그분이 나를 믿고 사랑하시기에 이런 고통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오로지 그분하고만 통하는 미소를 보내드립시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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