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내 어머니이며'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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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9-01-27 | 조회수63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누가 내 어머니이며> (마르 3,31-35)
-유 광수신부-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게십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나서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우리는 어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일치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로 공통된 점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그 기준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에 대한 해답이 오늘 복음에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마르타의 집에 가셨을 때에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고",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 때에 마르타가 예수님에게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가 10,41-42)라고 말씀하셨다.
마르타가 한 일도 중요하다.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그분을 시중드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중요한 일인가? 마르타는 자기 나름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모든 가치 판단은 예수님께 시중 드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그녀를 보고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마저 미웠고 참다 참다 못해 드디어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 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고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르타의 생각이었지 예수님이나 마리아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두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였다. 마르타는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마르타에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마르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했던 것인데 예수님은 "염려하고 걱정"이라고 말씀하셨고 오히려 마리아에게 "가장 좋은 몫"이라고 하셨다. 마르타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마르타는 듣는 것보다는 활동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활동도 중요하다. 그러나 활동하기 전에 먼저 듣는 것이다. 듣고 나서 활동하는 것이다. 듣지 않으면 무슨 활동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따라서 먼저 듣고 활동하는 것이 일의 순서요 그래야 올바른 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도 바쁘게 활동을 한다. 활동은 열심히 하는데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소홀히 하기가 쉽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도록 노력하는 것이 영성생활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늘 밖에 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늘 같은 수준에 머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영성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주위에 둘러 앉아 잇는 자리는 모든 이에게 개방된 자리이며 모두가 안으로 들어와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야 할 자리이다. 그 자리는 내가 얼마큼 안으로 들어와 앉느냐에 따라 내가 앉을 자리가 있을 것이고 또 그 옆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가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 주위에 둘러 앉지만 모두가 같은 수준에 둘러앉는 것은 아니다. 앞줄에 둘러 앉을 자리가 있을 것이고 뒤에 둘로 앉을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각자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수준에 맞는 사람들끼리 둘러 앉을 것이다. 그러나 옆자리는 항상 개방되어있는 자리이다. 누구의 자리라고 정해진 자리가 아니라 누구나 와서 앉을 수 있는 자리이다. 아무나 앉으면 또 그가 또 나의 형제 자매가 될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자리, 그 무엇으로도 매여있거나 제한을 두지 않는 자리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말이 서로 통하는 사람들끼리 둘러 앉은 자리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모두가 형제, 자매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자리이다. 이 자리는 모든 사람들이 와서 앉아야할 자리이며 그곳에서 서로 친교를 나누며 형제 자매로 맺어져야할 자리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신 주위에 둘러 앉기를 얼마나 원하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너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제 날개 밑으로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 37)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 주위에 둘러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부터 배우고 그런 자세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자. 그래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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