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비인두암으로 진단받고 방사선 치료를 위해 부모와 함께 내원한 여학생이 있었다. 암 선고를 받고 진료실을 들어서는 가족의 어두운 모습, 약간은 반항적인 얼굴의 여학생을 통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격이 민감한 여고생 시절에 큰 병으로 투병하는 학생이 안타까워 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많은 배려와 함께 정성껏 치료했다.
치료종료 한 달째 CT검사에서 암은 완전히 치유되었고 부작용도 심하지 않아 성공적인 치료가 되었음을 학생과 가족에게 설명했다. 그때 내가 학생에게 처음 내원 당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병을 이야기해 주지 않느냐고 했던 일이 생각나느냐고 물었더니 학생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부모는 크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딸과 함께 진찰실을 나갔다.
그런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서운했다. 그동안 내가 그 여학생을 위해 얼마나 신경 쓰고 배려하고 기도하면서 치료했는데 그리고 완치를 시켰는데 “선생님, 잘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한마디해 주길 기대했는데 그냥 나간 것이다.
나는 앞에 있던 간호사에게 그 여학생이 너무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푸념을 했다. 귀갓길에도 계속 그 학생에 대한 서운한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내 마음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그렇게 정성껏 치료해 주고 완치시켜준 학생이 한마디 안 하니 서운하지? 나도 너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구나.”
그렇다. 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께 나는 언제나 푸념이나 힘들다는 말만 했지 감사의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 학생은 내가 주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보내주셨음을 깨달았다.
이 일은 오히려 내가 그 학생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이렇듯 주님께서 뿌리신 신앙의 씨앗은 알게 모르게 자라 나의 일상 속에서 과거에는 학생의 버릇없음을 탓하고 말았을 일을 이제는 그 속에서 주님의 메시지를 민감하게 느끼는 정도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분께 의지하고 따르면 우리의 믿음은 알게 모르게 자란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창걸(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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