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을 위해 익숙한 곳을 떠나 세상과 분리되어 별도의 공간에 홀로 머물러야 할 때가 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하여’ 특별한 시기를 마련하시는 것은 당신과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초대다. 이 때에는 내적 침묵과, 외적 단출함이 필요하다. 영혼과 육신이 고요해지고 단순함에 젖어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에너지가 온몸을 차지한다. 그 힘은 어떤 도전에도 굴하지 않는 자존감과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끌어올린다. 나는 이것을 ‘침묵의 역동성’, ‘외딴곳의 역동성’이라고 부른다.
일상을 떠나 피정 집으로 들어오는 환한 얼굴의 형제자매들을 볼 때는 더욱더 확연히 하느님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 하느님의 음성만을 들으려는 올곧은 내적 눈이 뜨이면서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간다. 기도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누러 올 때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재창조되는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 안에 내재된 죄의 속성, 자신을 혼란으로 몰고 간 상황,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아픔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품 안에서 의미를 되찾는다. 그리고 이런 정화의 시기를 거치면 기쁨이 찾아온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나 평화와는 다르다. 마치 정화된 물처럼 맑고 깨끗하여 고요하고 은근한 평화가 침묵 안으로 잦아들어 들뜨지 않는다. 그 모습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흐뭇해지며 외딴곳으로 초대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역동적인 창조의 힘을 느끼게 된다.
이은주 수녀(샬트로성바오로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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