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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 <하>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9 조회수295 추천수3 반대(0) 신고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 <하>

"나는 어디서 왔나 …” 과학·종교 서로 문 열어 놓고 있죠

 
  명동성당 경내를 거닐며 담소하던 장회익 교수左와 차동엽 신부는 “과학과 종교는 ‘겸손함’과 ‘열려 있음’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룡 기자]
 
 
‘진화론’ 하면 ‘다윈’이다. 그럼 찰스 다윈은 무신론자였을까, 아니면 유신론자였을까. 현대 과학자들은 “다윈은 평생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했던 학자”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딸의 죽음 앞에선 신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무신론을 옹호한 적도 없다. 다윈은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상대방은 종교였을까, 아니면 그 시대의 통념이었을까. 과학과 종교, 둘은 당시에도 영원한 화두였다.

12일은 다윈의 200번째 생일이다. 또 올해는 진화론의 고전 『종의 기원』 150돌이다. 지난주에 이어 기획대담 ‘창조론 대 진화론’을 싣는다. 지난달 22일 물리학계의 거두 장회익(71) 서울대 명예교수와 가톨릭의 스타 논객인 차동엽(51) 신부가 나눈 인간과 신, 과학과 종교, 진화와 창조에 대한 내용이다.

 



신의 존재? - 성경인가, 자연인가

▶장 교수=초기 과학자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성직자도 꽤 있었다. 그 시대에는 하느님이 쓰신 두 권의 책이 있었다. 하나는 ‘성경(Book of Scripture)’이고 또 하나는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이다. ‘스크립처’와 ‘네이처’ 서로 운율도 맞다. 성경과 자연, 그 속에서 과학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했다. 자연 속에 하느님이 새겨 놓은 말씀을 읽으려 했다.

▶차 신부=과학은 자연법, 종교는 영원법을 다룬다. 그런데 둘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톨릭)는 영원법 안에 자연법이 있다고 본다. 창조론 안에 진화론이 있다고 본다.

▶장 교수=다윈의 신앙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느끼는 공감대가 있다. 다윈도 처음에는 생명이 그렇게 거대한 자연의 질서로 연결됐다는 걸 몰랐을 거다. 그걸 알았을 때 대단히 놀랐을 거다. 성경에 쓰인 문자대로의 신앙과는 다를 수도 있다. 다윈은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 내면적인 신앙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차 신부=1916년과 96년, 두 차례에 걸쳐 ‘과학자들의 신앙’을 조사한 자료가 있다. 결과가 흥미롭더라. 첫 조사에서 과학자의 40%가 유신론적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여덟 번 바뀌었다. 과학도 놀랄 만큼 발전했다. 과연 96년에 실시한 조사에선 과학자의 몇 %가 유신론적 입장을 보였을까. 답은 40%로 똑같다. 결국 궁극의 초월적 영역에 대한 선택은 주관적인 것이다.

▶장 교수=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신(神)’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많은 경우 이것은 자연의 질서를 말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자연의 신비를 보라고 했다. 그걸 보면서 깊은 종교적 감흥을 느끼지 못하면 이상한 거라고 했다. 그건 특정 종교를 말한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신앙적 체험을 이야기한 거다. 사람들은 흔히 기적이나 이적(異蹟)을 통해 신을 찾으려 한다. 아인슈타인은 달리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함부로 벗어나는 게 신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자연의 오묘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생명과 신, 나와 우주의 관계

▶차 신부=이스라엘은 중동(中東)이다.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다. 그래서 성경은 동양적 사고에 더 가깝다. 그리스와 로마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동양 특유의 통합적 사고다. 그래서 종교도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장 교수=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내겐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큰 숙제였고 화두였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모든 게 놀랍고 신비하다. 그 중에서도 ‘생명’이 특히 그렇다. 생명을 볼 때도 ‘부분’과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생명은 낱낱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혀를 움직여 말하고 있다. 무슨 에너지로 움직이나. 태양 에너지로 움직이는 거다. 이렇게 촘촘한 인과(因果)의 실타래로 엮인 것, 그게 생명이다.

▶차 신부=그건 물리학자로서 이해하는 생명의 내재적인 메커니즘이다. 좀 더 듣고 싶다.

▶장 교수=‘낱생명’인 내가 진정한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태양과 지구로 구성된 생명의 전체 틀, 곧 ‘온생명’ 안에서 그 한 부분으로 엮어져 있어야 한다. 마치 나뭇잎이 나무 전체를 떠나 나무 노릇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온생명이면서, 동시에 낱생명이라는 이중의 주체성을 갖고 있다.

 



인간과 자연 - 정복인가, 돌봄인가

▶장 교수=『종의 기원』이 나온 지 150년 지났지만 생명에 대한 이해는 훨씬 더 깊이 가야 한다. 진화론이 다소 협소하게 해석된 점이 있다. 적자생존까지는 좋은데 ‘약육강식이 자연의 질서’라는 식으로 나가기도 했다. 이는 아주 일면적인 해석이다. 진화의 밑바닥에는 경쟁과 지배가 아닌 거대한 협동의 체계가 있다. 생태계에선 수천 만의 생물 종들이 서로 협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차 신부=성경 창세기 1장28절에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게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라는 뜻일까. ‘다스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찾아봤더니 ‘라다(radah)’였다. ‘라다’는 목동이 양을 돌볼 때 먹이고 다스리는 의미다. 그처럼 자연을 돌보라는 뜻이다.


진화와 창조, 그 궁극의 지향점

성경에는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란 구절이 있다. 알파는 시작, 오메가는 끝으로 풀이된다. 종교와 과학, 창조와 진화는 어떨까. 그 끝에 과연 궁극적인 종점이 있을까.

▶차 신부=일종의 메타포(은유)다. 이 현실계에서 이해하자면 ‘나는 창조자다, 나는 섭리자다’라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차원을 넘어선 세계에선 알파도, 오메가도 필요가 없을 거다.

▶장 교수=그 문제를 다룬 이가 고생물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인 테이야르 드 샤르뎅이다. 그는 과학을 바탕으로 신학의 그림을 그렸다. 물질의 단계, 생명의 단계, 인간의 단계를 거쳐 신의 궁극적 섭리에 이르는 ‘오메가 포인트’를 제시했다. 그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정지된 게 아니다. 생명이 처음 시작된 35억~40억 년 전에는 나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가 지구상을 떠돌아다니는 먼지 덩어리에 불과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 먼지 덩어리가 변하고, 변해서 내가 됐다.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존재, 우주에 대해 묻는 존재가 출현한 거다. 앞으로는 더 놀라운 일이 생길 거다. 과학자는 다만 여기에 대해 열려 있을 뿐이다.

▶차 신부=‘오메가 포인트’에 대해 철학자들은 진·선·미가 하나가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신앙적 측면에서 보면 요한묵시록 21장4절(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에 나오는 ‘눈물도 없으리라’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본다.

▶장 교수=모든 것의 근원이고, 모든 걸 포괄하는 어떤 것. 과학은 그 최종 원리를 증명할 수는 없다. 최종 원리는 항상 가정으로 남는다. 우리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겸손함’과 ‘열려 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과학은 초월과 종교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차 신부의 말대로 종교가 과학을 바라보며 문을 열어두고 있듯이 말이다. 

정리=백성호·배노필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장회익(71) 교수

-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전 녹색대학 총장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박사
- 저서:『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공부도둑』 『이분법을 넘어서』(공저) 외 다수

◆차동엽(51) 신부

- 인천 가톨릭대 교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오스트리아 빈 대학 박사
- 저서: 『무지개 원리』 『맥으로 읽는 성경』 『통하는 기도』 『밭에 묻힌 보물』 외 다수


▒▒궁금해요▒▒

종의 기원


찰스 다윈(1809~82)이 1859년에 출판한 책으로 진화론에 대한 기념비적 저작이 됐다. 2009년이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란 것은 이 책이 다윈 50세에 나온 숙고의 산물이란 것을 말해준다. 이 책 이전에도 그는 10여권의 책을 냈다. 20대에 비글호 탐사로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뒤 20여 년을 더 진화시킨 사상이 이 책에 담겼으며 1872년까지 여섯 번째 수정판을 냈다. 다윈은 ‘진화(evolution)’를 ‘진보(progress)’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또 ‘고등 동물’ ‘하등 동물’이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테이야르 드 샤르뎅

기독교적 진화론을 주창한 프랑스 사상가 테이야르 드 샤르뎅(1881~1955)은 지질학자·고생물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였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문자 그대로의 창조론을 거부해 가톨릭 교단과 마찰을 빚었다. 중국·미국 등지로 ‘종교적 유배’를 떠나고 생전에 그의 저서가 교회에서 금서가 되기도 했다. 베이징 원인(猿人)의 발굴과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온생명

장회익 교수가 주창한 생명 개념이다. 생명의 자족적 단위를 이루는 한 묶음 전체가 ‘온생명(global life)’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예로 들자면 ▶에너지원인 항성(태양)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있는 행성(지구) ▶물과 공기 등이 인간과 박테리아 등까지 포함한 지구 생명체와 함께 온생명을 구성한다. 이 온생명 안에 형성된 개체 단위들이 ‘낱생명’이다. 전체적으로 생명을 구성하는 인과의 실타래가 ‘온생명’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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