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십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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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9-02-11 | 조회수454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십니까?>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께서 주신 자기의 사명을 되돌이켜보며,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 자기가 외쳐왔던 메시아인가하는 근원적 질문을 그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께 묻는다. 요한이 예수의 행적을 보아 어렴풋 하게 가져왔던 신뢰를 죽음을 앞둔 이제는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에대해 예수는 즉답을 하지 않으신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듣고 본 대로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Lu7,22.
이 말씀은 단순히 당신이 보여주신 치유의 기적을 보고 믿으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당시 억압 받는 하층 계급의 삶은 죽음보다 못한 사회적 소외 속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마지못해 살아가는 삶이었다. 미래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으며, 현재 자신들이 겪는 모습도 죄의 결과라는 사회적 편견 탓에 이중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어디에도 매달릴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그들을 구해주시는 예수의 행위야말로 바로 새로운 삶,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권위를 갖고 계시는 분이 자신들을 받아 들이시는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을 것이다. 공생활 중 예수의 모습은 세례자 요한이 보인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나지르인 서약을 한 요한은 광야에서 홀로 생활 하였으며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그러나 예수는 죄인들과 어울리며 잔치에 참석하고, 여인들과 하층민들과도 무리지어 다니곤 했다.그당시 가장 멸시를 받던 세리와 함께 식사도 하고 심지어 제자로 받아 들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지배층으로 부터 의혹의 눈초리로 견제받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의 삶을 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누구나 삶에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셨다. 모든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셨다. 그것도 미래의 구원 희망만이 아닌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삶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구현하기를 바라셨다. 누구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먼저 선포하고 회개를 부차적인 것으로 삼으셨다. -요한은 먼저 회개를 촉구했다.- 선행하는 이사야서의 인용문은 바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이루어 졌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현세에서도 구원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한복음서의 "현재적 종말론"은 요한 저자의 신앙이라기 보다는 예수에게서 부터 직접 유래함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실상 죽음보다 삶을 원하셨다. 당신이 생명이며, 빛이며, 진리이며, 길이심을 믿게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이렇기에 우리는 게쎄마니에서의 예수님 기도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야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번민, 슬픔, 외로움과 같은 모든 표현은 바로 나약한 인간이 죽음 앞에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이며 이는 예수의 생애 중 가장 어둡고 쓰라린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이런 모습에서 "왜 이렇게 고통을 받으셨는가? 그분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 아니던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려야 한다. 우리는 예수의 운명을 죽음으로만 몰고 가려는 병적인 오류를 피해야 한다. 그분이 최후까지 잔을 거두어 달라시는 "하느님께 잔을 옮기는 기도"를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회심시키는 기회를 잡으시려는 의도에서 였다. 당신의 목숨을 구하시려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마지막 까지도 인간을 사랑하셨다.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죽음을 거부하셨고, 나중에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다. 세례자 요한의 질문은 오늘 날 우리의 질문이기도하다. 하지만, 여전히 중단되지 않고 의심이 생기는 까닭은 우리의 한계가 거기 까지이기 때문이다. 내 감각으로 직접 느껴야 비로소 믿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있다. 하지만,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지 않듯 진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나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깨닫지 못했다고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진리를 우기니 참 진리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Jh 8,32. 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진리를 얻는 길이다. 그분의 말씀이 바로 진리이다. 그분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 마지막까지 질문하던 "오실 분" 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분의 행적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참 신앙인의 길이다. 마라나 타.(오소서 성령이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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