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5주 토요일-일념과 다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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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영희 | 작성일2009-02-14 | 조회수514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예수님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4천명을 먹이신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4천명이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 곁에 같이 있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예수님의 무엇이 이 많은 사람을 당신 곁에 붙잡아 두었고 예수님의 무엇이 이들을 사흘 동안이나 붙잡아 두었을까? 그것도 굶겨서 보내면 쓰러질 정도로 먹지도 못한 사람들을. 요즘 한창 인기 있는 가수들인들 그들의 팬을 이렇게 붙잡아 둘 수 있을까? 그렇다면 며칠을 굶어도 떠날 수 없는 그 매력은? 너무도 교만한 저임을 미리 양해바라며 얘기한다면. 저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만나보러 갈 생각이 없습니다. 일 때문에 또는 그러 해야 하기에 가기는 해도 내가 보고 싶어 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대통령이 우리 수도원 마당에 와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태리를 여러 번 갔어도 교황님 알현하러 간 적이 없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세계적인 연주자나 단체가 와도 저는 보러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귀국 연주회와 같이 격려차 가본 것 외에는 연주회를 한 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제가 교만하기 때문이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적 사랑이 아니라면 저를 잡아끌지도 붙들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며칠을 굶어도 배고픈 줄 모르고 사람들이 주님 곁에 있었던 것은 배고픔을 잊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주님께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배고파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영적 사랑의 풍요를 경험한 사람은 알 것입니다. 사람들을 잡아끌고 며칠을 붙잡아 두는 사랑의 매력도 대단하지만 4천 명을 먹이시겠다는 그 사랑의 마음도 대단하십니다. 제자들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뿐이겠습니까? 인간이라면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공중의 새까지 먹이시려는 그 하느님의 마음이 없으면 어느 인간도 그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먹이시는 것은 어차피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것은 먹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인간의 차이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는 것과 능력의 하느님을 보는 것, 이것도 우리와 예수님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그저 먹이겠다는 一念외에는 다른 것 생각지 않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즉 一念과 多念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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