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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겉모양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자!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5 조회수523 추천수5 반대(0) 신고
 

겉모양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자!

(예수, 생명의 문-요한복음 묵상.)


예수께서 안식일에 마비된 환자를

고쳐주었다는 이유로 유다 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안식일에 사람 하나를 온전히 고쳐

주었다고 해서 왜들 분개합니까? 겉모양을

보고 심판하지 말고 의로운 심판을 하시오”

                            (요한 7,23-24)


예수님께서 생명을 가져다 주셨다는 이유로

죽으셔야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물론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 온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진실하신데 여러분은 그분을

모릅니다. 나는 그분을 압니다. 내가 그분으로부터

왔고 그분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7,28-29)


만일 우리가 예수와 하느님을 서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하느님도 모르는 셈이다.


만일 우리가 강생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다.


더러는 예수님을 믿었으나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했다.


예수께서는 당신 말씀을 통해서만 활동하신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은, 말씀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설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에게서는 그분을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온다.


바리사이들이 하인들과 배우지 못한 백성들을

비난했을 때,

니고데모는 예수를 이렇게 변호한다.


“우리 율법에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지도 또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심판

하게 되어 있습니까?”(요한 7,51)


니고데모는 법이 올바로 집행되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그는 예수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올바로

바라보고 있는 유다 인들을 대변하고 있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

유다 인들을 초대한다.


성경을 올바로 읽는 사람이라면,

예수께서 모든 약속을 실현하시는 분임을

성경에서 깨달을 수 있다.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강생은 하느님의 뜻이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

본래 창조사업의 목적과 의도 그리고 사랑이라고

하는 절대적 본질에서 사람들이 잘못살고 있음을

알게 되셨다.


인간의 죄와 벌로써,(창세3,4-19)

뱀의 유혹으로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소담스러워 여자가 열매를 하나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자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리하여 여인에게는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고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낳고 남편을

갈망하고 여인의 주인이 되게 하리라.


그리고 사람에게는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을 것이며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고 결국 먼지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하시면서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었다.


카인과 아벨.(창세4,4-8)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던 카인이 결국 질투와

시기로 분노를 사게 되었고 아우인 아베를 들로 끌고

가서 죽였다.


인류의 타락.(창세6,5-7)

주님께서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바벨 탑.(11,4-9)

자,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하고 하느님의 권능을 따르려는 오만과 교만 때문에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내려 보내시어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랑으로 내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자는 율법도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유지시키려면 숨 가쁜 삶에서

더 의욕적 삶을 위한 휴식이 필요한 것이므로,


안식 날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그 목적에 맡는 행위임에도 율법에 의한 잘못된 판단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또는 친구지간의 관계에서도

참다운 우정을 나누기 위한 그리고 사람다운 관계를

맺으려면 진정한 그리움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하며

다음과 같은 법정스님의 말씀을 참작하자!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울림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회장이라든지 사장이라든지 하는 호칭에 문제를 두고

또는 나이에 집착하여 친구의 정을 차별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겉모양만 보는 편협한 관계를 고집하는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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