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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살던 고향[감곡 성당 김웅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9 조회수652 추천수5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매괴 성모님 순례지   -   봄꽃-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이 무슨 축일이죠?

<예수님 승천대축일>

승천대축일이 뭡니까?

무엇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예요?

주님 승천하신 것

昇天이 뭐예요?

천승의 반대?


세상에 신기한 일 많죠?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아, 이래서... 이래서~~이렇게 되는구나!’

그런데 비행기 탈 때마다 신기한 게 뭐냐!

비행기가 뜨는 것...

제가 외국여행을 많이 다니잖아요.

그런데 탈 때마다 신기해요.

500명 600명....사람을 태우고, 짐이 10톤 20톤씩 돼요.

연료가 비행기의 반을 차지하는...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땅바닥을 박차고 올라가는 것도 신기하고....

미국까지 13~14시간을 한 번도 땅에 내리지 않고 그 긴 시간을 날아가는 걸 보면...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참 신기해요.

큰 배가 바다에 떠다니는 건 신기하지 않아요.

그건 그럴 수 있겠다~~바닷물이라도 떠받쳐 주는 게 있으니까~~

미사 때 우리는 ‘신앙의 신비여!’

저는 비행기 탈 때마다 ‘비행기의 신비여!’


이제는 비행기 여행만이 아니라 어디까지?

우주여행까지...대기권을 벗어나서 달까지 갔다 오고...

현대시대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주 옛날에 수천 년 전에는 사람들이 하늘에 올라갈 수 없었을까!

올라갔다고 기록이 나와 있어요.

어딘지 궁금하시지요?

창세기 5장 24절에 보면 아담의 6대 후손 에녹이 365년을 살았는데...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하느님께서 데려가셨다!’

그것에 대한 풀이를 히브리서 11장 5절

‘에녹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늘에 옮겨져서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


열왕기 하권 2장 11절

하느님이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태워서 하늘로 데려가셨다!

회오리바람 아시죠?

아마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얼마나 뺑뺑이를 돌았겠습니까?


토비트서 12장 20절 ‘라파엘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는 표현이 나와요.


옛날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늘에는 누가 사느냐!

하늘에는 하느님과 찬사들이 살고 있고 성인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지요.

지하에는 악마와 마귀들이 들끓는 곳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어디로 올라갔다고 나왔지요?

하늘로 올라갔다!

이런 표현을 물리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겁니다.

어떻게 올라가셨느냐!

손오공처럼 발밑에 구름이 떠 받쳐져서  ‘휙~~’ 하고 올라가셨느냐!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서 선녀와 나뭇꾼처럼 밧줄을 타고 올라갔느냐!

‘주님의 승천’ 하면 우리들은 본질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올라가셨을까!'

분심을 자꾸 가져요.

분심 가질 필요 있어요? 없어요?

정답은 예수님스럽게 올라가셨어요.

알아서 그 양반 올라가셨어....알아서~~


소련의 최초의 우주비행사였던 가가린이 지구궤도 밖 저 위에 올라가서

소련관제소에 첫 번째 송신을 뭐라고 보냈느냐!

“야, 하늘에 올라와 보니까 하느님 찾던 인간들이 찾던 그 하느님,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통쾌하고 시원한 말이었을 거예요.

하늘에 올라갔더니 하느님도 없고 천국도 없더라!

그것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무지한 말입니다.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지요.

어느 장소에 머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국이라고 하는 것도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 사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사느냐에 따라서 오늘 하루가 연옥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얼마나 속을 끓이고 미워하면서 사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가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나 천국은 시간이나 공간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의 제약 속에 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하느님을 해석하려고 하고/ 천국을 증명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가가린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천국도 안 보이고 하느님도 안 보이는 겁니다.


하느님은 時空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승천하셨고 그 분이 가셔야 할 곳에 가셨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승천의 의미를 내가 어떻게 알아듣고

이 시대에 내가 어떻게 승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살아야 되느냐!


주님 승천의 첫 번째 의미는 귀향이라고 그럽니다.

歸鄕이 뭡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예수그리스도가 자기 고향을 찾아서 하늘로 올라가셨듯이

우리 신자들도 고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리는 이 고향은 내가 광주 출신이냐~~.수원출신이냐~~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그 고향은 아닐 겁니다.


여기에서의 고향은 뭐냐!

하느님이 만들어 주셨던 하느님의 모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변한 것을 볼 때

‘저 사람 어렸을 때 저렇지 않았는데... 왜 저렇게 망가졌지?'

어떤 사람은 미움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미움덩어리로 차 있었겠습니까?

단순하고 어린이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을 거예요.


승천이라고 하는 것은/ 미움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이 태초에 만들어 주셨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승천이라고 하는 것은/ 늘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이 그 불안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주님이 처음 나에게 주었던 평화의 사람으로 돌아가야 되는 겁니다.


승천이라고 하는 것은/ 늘 질투로 부글부글 끓던 그 사람이

관용과 인내를 가진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이 뒤바뀌는 것도 한순간이고...

사람이 망가지는 것도 한 순간이에요.


제가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할까요? 말까요?

당연히 하라고 그러겠지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아주 친한 친구가 셋이 있었는데 365일 붙어살았어요,

저는 중학교 때 운동을 했고...그 셋 중에서 싸움을 제가 제일 잘 했어요.

그 중에서 제일 여리여리하고 내성적인 친구가 하나 있었고, 한 애는 보통 성격이었어요.


그 셋이 지금 어떤 인생길을 걷고 있느냐!

제일 싸움 잘하던 나는 사제로 25년을 살고 있고~~

제일 내성적이고 얻어터지던 아이가 인천에서 조직 깡패의 두목이 되어 있어요.

제일 어리버리하던 아이가 인천경찰서에서 강력계 형사반장이예요.

소설 같지요?

그런데 진짜예요.


어느 날 조직폭력배인 친구에게서 전화 왔어요.

“야, 걔 있잖아...걔 몸조심 하라고 그래라... 우리 애들 자꾸 잡아 가두는데

내 더 이상 말릴 수 없어...걔, 강력계에서 나와 가지고, 시골 파출소에 가서 살라고 그래! 

돈은 내가 대어 줄테니....웅렬이 니가 다리 좀 놔라!”

“야, 이 미친놈아, 내가 그런 것 하는 사람이냐....신부가...너 내 앞에 나타나면 죽어!”

지금도 셋이 개인적으로 만나면 친해요.

한 사람은 형사반장이고...한 사람은 조폭의 두목이고 하나는 그놈들 회개시키는 사제이고...

셋 중에 누가 제일 잘 된 것 같아요?

<神父님>

하하하.....짝짝짝~~~

제가 고향이 인천이거든요               

지금도 셋 이름은 다 알아요...

딴 데서 들어온 사람 말고.. 인천 토박이들은 아무개...아무개.. 하면

셋이서 희한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다 알아요.


저는 그 조폭 두목이 변하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이 아이가 맨 날 얻어터지니까 어느 날 도장에 가서 격투기인지, 뭐 그런 훈련을 받습니다...체육관에 가서 몸도 늘리고 보디빌딩도 하더니... 싸움에 요령이 생기면서 동네를 장악하기 시작하고..인천의 한 구를 장악하고..호텔을 장악하면서 조직깡패의 두목이 되었어요.

인천에 가서 깡패가 시비를 걸면 걔 이름만 딱 대면

“오셨습니까...형님!”

조폭을 친구로 둘 만도 해요^^


저는 늘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니가 지금 나이가 30대도 아니고...40대도 아니고...50이 넘었는데 너 언제까지 칼부림하고...너 이러다가, 자식도 있는데.. 언제 칼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너 옛날에 그 순진하고 착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니? 내가 도와줄 테니까 너 하느님 믿어라! 내가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아끼고, 우리 죽마고우가 아니냐! 우리 셋이 어쩌다가 한 놈은 형사반장이 되고...한 놈은 사제가 되고... 한 놈은 조폭 두목이 되었느냐!”

이 얘기 가지고 영화감독이 영화 만들겠다고 몇 번 찾아왔었어요.

기가 막힌 소재라는 거예요.

‘싫다...우리 가지고 장난 하지 말라고...’


살다보면 부서지고/ 망가지고/ 인생살이 고달퍼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상처를 받아서/  옛날에는

이렇게 악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세월이 가다보면 자꾸 망가지고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승천의 첫 번째 의미는 예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셨듯이

주님이 나를 창조하셨을 때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파견입니다.

승천은 떠남과 동시에 새롭게 찾아주신다는 것을 뜻하지요!


예수님이 떠나신 뒤에 누구를 보내주셨습니까?

당신을 대신할 협조자 성령을 보내 주셨지요.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어느 자매님이 자녀 때문에 무척 고생을 해요.

허구한 날 교도소 들락거리고. 늘 파출소 들락거리고...

자식 문제 때문에 징징거리고 울다가

예수님이 자기를 버린 것 같대요..너무나도 서운함이 컸기 때문에...

그토록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식들 저렇게 빗나가는 것 보면서.....

그럴 만도 하겠지요..여러분도...그러실 때 있지요?

정말 기도하고 매달리는데 예수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귀가 먹으셨는지...

보청기를 사다드려야 될 형편인지...암만 기도해도 고민거리가 해결이 안 되면 서운한 거예요.                                         
  

그나마 요 모양이라도 요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더 나쁘게 안 된 것이 바로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주님은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 생애의 어느 한 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신 적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 승천의 의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버리거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지옥의 문턱에 넘어서기까지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계십니다.


지옥의 문턱을 넘어서면 하느님도 어쩔 수 없지요?

하느님이 언제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느냐!

지옥의 문턱을 넘어서기까지.....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애를 쓰세요.

그러나 지옥의 문턱을 넘어서면 못 빠져나오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만 먹으면 되지요.

성령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만 먹으면 되지요.

그 분을 찾으면 그 분은 보여주시고...

그분을 부르면 그분께서 대답해주십니다.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만나주십니다.

                       

나중에 기도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미사 중에 기도하십시오.

생각날 때 바로바로 기도하십시오.      


어떤 형제가 예수님을 죽기 전에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지를 못하고...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도 않았고...또 사랑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병자성사를 받을 때 신부님께 그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한평생 예수님 만나기를 원했지만 제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당신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마지막 성체를 그 사람 눈앞에 들어 올리면서

“평생을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속에 사셨으면서도 하느님을 못 봤다고 하십니까?

자, 여기 예수님 만나십시오...예수님 들어가십니다.”

하면서 임종 전에 입에다가 성체를 넣어주었어요.

바로 그때 주님을 체험하고 눈을 감았다고 그럽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의 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하시지는 않지만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체를 통해서...말씀을 통해서...때로는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때로는 양심을 통해서...사제들의 강론을 통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 분을 뵙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닫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 분은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승천하셔서 성부 오른편에 좌정하셨지만

‘나 이제 지긋지긋한 너희들로부터 떠나서 이제 편하다...내 너희들 쪽으로 얼굴 쳐다보기도 싫어!’

이러지 않으시고 당신을 대신할 위로자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하는 것,


사제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사제에게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죄를 짓고 고백소에 죽어도 들어가기 싫지만...

그래도 뒤에서 등을 떠밀어 고백소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 누구시죠?

성령이시지요.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저 인간이 잘못했는데 내가 손 내밀기 죽어도 싫지만 용기를 내어서

“내가 잘못했어... 마음 풀어!”

이렇게 하시는 분이 누구시지요?

며느리가 밉고 얄밉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는

그 며느리에게 사랑을 보이고 정성을 다하게끔 하 시어머니 마음을 돌려놓는 분이 누구시라구요?

성령이시지요.


주님의 귀향의 의미는 성령파견입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주님의 성체성혈이 축성이 되어서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 합니다.

그 얘기는 뭡니까?

자, 예수님 만나십시오!

여러분들은 ‘아멘,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하시고

타볼산에서 변화되셨던 그 모습으로 천국에 올라가셨듯이~~

우리들은 이 미사에 오기 전에 마음고생, 몸 고생, 수많은 십자가...분노, 미움을 가지고 왔다고 하더라도 이 미사 중에 그 때를 다 벗어버리고 힘을 받아서...용기를 받아서... 이 세상에 나갈 때는 성령의 갑옷을 입고/ 진리의 투구를 쓰고/ 기쁨의 허리띠를 두르고/ 승천하는 또 하나의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여주도록 애씁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8.  05. 04 (주님승천 대축일) 가르침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매괴 성모님 순례지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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