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월 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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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3-03 | 조회수906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3월 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 마태오 6,7-15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는 주님>
제가 어린 시절 때만 해도 전통 민간신앙이 생활 안에서 차지하는 몫이 컸습니다. 무속인들이며, 점쟁이들, 무슨 무슨 동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집안에 우환이 찾아오면 당연히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처방 중에 하나가 ‘굿’이었습니다. 스토리는 대체로 뻔했습니다. 조상 중에 억울하게 죽어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있는데, 그로 인해 이 아이가 지금 이런 병에 들렸으니, 당장 굿을 해야 한다고, 좋은 날짜를 잡자고, 한 상 잘 차리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징소리와 함께 음산하고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 또 굿하는구나’하며 굿 구경하러들 몰려갔습니다. 재수 좋으면 시루떡도 한 조각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광경들이 아스라이 기억납니다. 우선 거나하게 한 상 잘 차립니다. 이어서 요란하게 차려입은 무속인이 등장합니다. 온 몸을 흔들며 격하게 춤을 추고 뭐라고 뭐라고 외쳐댑니다. 이어서 억울하게 세상 떠난 원혼을 불러냅니다. 그 원혼을 달랩니다. 앞에 차려진 것 우선 맛있게 드신 다음 마음 푸시고 먼 길 잘 떠나라며 위로합니다. 더불어 잡신들을 불러냅니다. 그들의 힘을 빌려보자는 것이겠지요.
예수님 시대 고대 근동 지방에서 행해지던 ‘이방인의 기도’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 역시 장황했습니다. 복잡하고 떠들썩했습니다. 수십, 수 백 가지의 신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치며 그들을 ‘기도의 현장’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집요하게 그들에게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신들을 압박하고 졸라대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는 신들이 귀찮아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청을 들어준다는 억지스런 기도방법이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이방인들의 기도 스타일이 은연중에 유다 백성들 사이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접한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황당하셨겠지요. 어떤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을 협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시험해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이 땅에 육화하신 하느님의 분신인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복잡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아주 단순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복잡하고 수많았던 율법조항들을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란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예수님의 단순성은 기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의식, 사랑의 하느님께서 절대로 우리를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신다는 의식, 어련히 당신께서 알아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신다는 의식, 결국 그분을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나라로 인도하신다는 의식입니다.
그분 앞에 필요한 자세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올바른 지향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센 믿음입니다. 세상 모든 걱정, 짐 다 내려놓고 그분 품 안에 푹 안기려는 노력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387번 /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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