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에 98세의 노 수녀님이 함께 사신다. 그분은 젊은 시절에 참 성실하고 명석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능력이 감퇴되어 오로지 기도와 식사, 그리고 실내에서 하는 작은 운동이 그분 활동의 전부다. 노 수녀님은 기억력이 쇠퇴해서 하루에도 수없이 공동 기도 시간과 미사 시간을 묻곤 해서 돌보아 드리는 수녀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12월 31일 마지막 송년 묵상과 나눔 시간에, 노 수녀님을 돌보는 수녀님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 중에 노 수녀님이 심하게 고집을 부리거나 수없이 질문을 하실 때는 때때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힘을 달라고 매달리면 그 화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사랑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앙은 미움과 분노를 삭이고 사랑이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시험하면서 초인적인 기적을 일으킨다. 그 기적은 물리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의 기적, 세속적인 시각 너머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의 기적,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기적이다.
니네베 사람들에게 요나가 기적이 된 것처럼, 초대교회의 믿는 이들의 삶의 자세가 기적이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사람들이 사랑을 실천할 때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그 사랑의 모범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배미애 수녀(착한목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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