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기둥의 인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 3.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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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9-03-08 | 조회수60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3.8 사순 제2주일
창세22,1-2.9ㄱ.10-13,15-18 로마8,31ㄴ-34 마르9,2-10
"말씀기둥의 인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가끔 피정 강론 때 신자들에게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당혹한 표정을 짓다가, “아뇨.” 하며 고개를 젓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느님 없이, 믿음 없이, 희망 없이,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정말 가난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무의미와 허무의 어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겉으로야 가난해 보여도 믿음으로, 희망으로, 사랑으로, 하느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위로 하늘을 보며 하느님께 기도하며 살라고
직립인간에 눈 들면 하늘입니다.
하늘보고 기도할 수 있는 영적 동물은 직립인간의 사람뿐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믿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려 합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배경임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하느님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에서 보다시피
너무나 자명하게 아브라함의 배경이 되고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 역시 산상에서의 변모장면을 통해
당신의 배경이 하느님이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배경이신 하느님의 빛이 예수님을 적시자
모습이 변하여 새하얗게 빛났다 합니다.
미사 전과 미사 끝날 때쯤의 여러분의 모습도 판이합니다.
하느님 배경의 빛이 여러분을 점차 적셔가면서
미사 끝날 때쯤은 점차 평화로 빛나는 여러분의 얼굴입니다.
온갖 나무들이 한 땅에 뿌리내리고 있듯이, 온갖 나뭇가지들이 한 하늘 안에 자유롭게 뻗어있듯이,
한 하느님께 뿌리내린 우리들이요
한 하느님 배경의 하늘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한 하늘같은 배경의, 한 땅 같은 배경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하느님 배경을 누구보다 절절히 체험한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그리스도 예수님을 배경한 믿음의 사람들, 말 그대로 바오로 사도처럼 천하무적 하느님의 용사들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이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라 침묵 중에 깨어있어 마음의 귀가 열려 있어야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잘 듣는 것은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잘 듣기 위한 마음의 침묵이요
분도규칙 첫 말도 ‘잘 들어라, 오 아들아’로 시작합니다.
불필요한 소음 같은 쓰레기 말들은 다 흘려버리고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일 때 내적변화에 성숙입니다.
아브라함은 진정 들음의 대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바로 들음의 사람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얼마나 하느님과 친숙한 믿음의 관계에 있는 아브라함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 늘 깨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즉시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 못합니다.
참 기분 좋은 대답입니다.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 부르실 때
나무 뒤에 숨어버린 아담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으로 직결되어야 들음의 완성입니다.
믿음의 진위를 판가름 하는 시금석은 순종의 행위입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들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입니다.
진정 믿음이 좋은 가는 순종의 행위를 통해 들어납니다.
순종할 때 겸손이요 겸손할 때 순종입니다. 순종과 겸손의 사람들 그 누구도 유혹하지 못합니다.
악마의 유혹이나 공격에 대한 최상의 무기는 겸손과 순종뿐입니다.
하여 겸손을 모든 덕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입니다.
교만과 불순종의 사람, 악마의 첫 번째 표적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순종의 행위로 옮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입니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순종은 하느님의 복이 쏟아지는 통로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한 주님을 통해 부활의 축복이요,
우리 모두 그 축복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묵묵히 내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게 믿음이요 끝까지 인내하며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생명의 구원입니다.
결코 누구도 대신할 수도 없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내 고유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오늘 1독서에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십자가의 길은
참 힘들었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하느님께 이사악을 돌려받음으로
십자가의 길은 축복의 길이 되어버렸으니 믿음의 승리입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갈바리 산으로의 여정 역시 참 힘든 십자가의 길이었지만
마침내 하느님은 부활의 축복으로 보답해 주셨습니다.
사막의 여정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던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십자가의 여정 중에 지친 당신 제자들을
당신 변모 체험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신 후
말씀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사순시기 십자가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불이요 우리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중
주님은 당신의 변모 체험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고 믿음을 더해 주시어
말씀기둥따라 십자가의 여정에 항구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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