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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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9-03-09 | 조회수53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38)
-유광수 신부- 우리는 마태오 복음에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들었고 오늘 루가 복음에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완전하신 아버지",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다. 이분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그분의 자녀이다. 자녀는 부모의 품성을 이어받는다. 즉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따라서 내가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라면 나에게 완전하신 아버지, 자비로운 아버지의 품성이 있고 그 영이 나에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하느님을 닮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자녀이니까.
그럼 자비로운 아버지란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은 부성과 모성을 겸비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히 자비로우신 것이다. 이 사랑은 오직 하느님만이 가지고 계신 사랑이시고 자비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우리를 낳아주셨고 길러주시는 아버지요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에서 그 다음 구절을 보면 하느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주어라."라는 말은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어떤가? "남을 심판하고, 단죄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주지 못한다." 왜 그런가? 자비로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처럼 부성과 모성애가 없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심만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으며 그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다.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주고자 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왜 그런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느 자식이라도 잘못되는 것을 원치 않고, 어느 자식도 미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고 모두가 서로 화목하게 사랑하며 지내기를 바라고 어떤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용서해주신다. 자신들은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해도 땀흘려 지은 농사를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런 행위를 하지 못한다. 그것은 부모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요, 사랑이다. 이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부모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식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 가사를 보면 부모의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사람의 마음에선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도 비록 당신을 배반하는 제자일지라도 그리고 당신을 향하여 욕하고 침뱉고 창으로 찔러대는 병사들도 그리고 당신을 사형에 처하는 빌라도도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단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가 23,34)라고 끝까지 용서하시고 마침내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의 마음에는 부성과 모성애의 한없는 자비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은 자비로움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하나의 원칙이 세워졌다면 이 원칙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이 나와야 한다. 그 다음 말씀은 바로 이런 원칙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신 것이다. 즉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남을 심판하는 일과 단죄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용서하고 베풀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왜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자비로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남을 제대로 심판할 수 없다. 우리가 남을 심판할 때 그 심판의 기준은 자비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심판하고 단죄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을 심판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고 심판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못 단죄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심판에는 한계가 있다. 심판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심판은 완전하신 아버지만이 올바르게 심판하실 수 있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심판과 단죄가 아니라 용서와 베푸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잘못 심판하고 단죄함으로써 내가 받는 고통과 억울함이 많이 있듯이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을 잘못 심판하고 단죄하였기 때문에 용서받아야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심판과 단죄가 아니라 용서와 베푸는 일이다. 그것이 곧 나의 잘못을 끊임없이 용서해주시고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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