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죠?”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견진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시골 본당을 방문하신 주교님이 나에게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주교님의 그 질문과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모습을 모범으로 주시기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엔 주교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된 지금은 그 말씀이 좀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벌거벗고, 나약하고, 다치기 쉬운 아기 예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도 평화와 기쁨을 온 세상에 퍼뜨릴 수 있는 우리 존재의 본성과 고결함의 원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오늘 복음에서는 한 분이신 스승, 한 분이신 아버지,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자기 자신의 신원이 하느님한테서 왔음을 믿고 선포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자유롭다. 그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일하지 않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남들이 자기를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방어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위선이나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지도자·스승의 모범으로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이들은 겸손을 축복으로, 기쁨을 열매로 후하게 받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믿었기에 기쁘게 봉사와 섬김의 삶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 토머스 무어는 “겸손, 그것은 낮은 곳에서 천국의 모든 미덕들을 싹 틔우는 감미로운 뿌리”라고 노래했나 보다.
배미애 수녀(착한목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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