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일/요한 2,13-22
“<이 초라한 육신의 장막이 허물어지는 날>”
한 사람의 힘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결법에 따라 거룩한 돈인 옛 히브리 화폐로 성전 세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환전이 필요했고, ‘이방인의 뜰’ 앞에서 바꾸어 주니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 하지도 않았다. 상인들 역시 멀리서 온 순례자들이 제물로 바칠 동물을 구하는 수고를 덜어 주었다. 성전의 고상한 사제단이나 상인들이나 순례자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예수께서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의 탁자를 엎어 버리셨다고 해서 그런 일이 없어졌을까? 이 일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행실을 고치지 않았다. 결국 로마의 침공으로 성전이 없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그대로 놓아둘 수 없으셨다.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되돌려 놓으셔야 했다. 그러나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이었다. 결국 이 일로 제거된 것은 성전 상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셀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성전이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그분 혼자서 시작하신 일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도 그랬듯이, 세상을 바꾸어 놓는 일은 늘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은 당신 몸을 성전에 비유하신다. 우리의 몸도 하느님의 성령을 모시는 성전이라면, 이 속에 은근 슬쩍 잡상인들이 끼어 들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것들을 몰아내는 일 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고 슬그머니 주저앉을 수도 있다.
성전이란 눈에 보이는 건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이러한 하느님 성전인 우리들의 모습을 잘 건축하고,아름답게 장식하며, 보존해 나가야 한다. 이미 건축된 성전에도 시간이 갈수록 보수가 필요하듯이, 하느님 성전인 우리들 역시 보수가 필요하다.현재 나 자신의 모습이 하느님 성전으로서 튼튼한지 진단을 해 보아야 하겠다.
말씀 : 김광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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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처럼 내가 정말 주님의 성전인지 생각해 볼 때가 많다. 주님은 당신을 성전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내 안에도 주님께서 살아 계시니 나를 성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의 성전인지 생각해보면 악취가 심하고, 더럽고, 추한 모습의 성전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환전상도 있고, 소리 지르는 장사꾼도 있고, 비둘기 장사도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사람들이 악마굴이(개구리의 일종)떼처럼 소리 지르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짓과 위선과 허식과 허례가 판치는 그런 성전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셔서 회초리를 들으시고, 좌판을 둘러엎으시며, 다시 정화를 해 주셔야 하는 성전이다. 사치의 극성에 순수함을 잃어버린 추한 성전이 바로 나의 모습이고, 그 더러움을 주님께서는 손수 다시 닦아 주셔야 하는 성전이다.
옛날에 한 숲이 있었는데, 낮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밤에는 벌레들이 울었다. 나무들이 무성하고 꽃들도 만발하고 온갖 생물들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녔다.그리고 거기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연의 침묵과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사시는 하느님의 집인 저 고독에로 인도되었다. 그러다가 정신 나간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수십 미터 높이의 건물들을 짓는가 하면 한 달 만에 강과 숲과 산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숲의 나무와 숲 흙 밑에 파묻혀 있던 돌들로 예배의 집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뾰족한 탑, 첨탑, 회교 사원의 첨탑이 하늘을 찔렀고, 대기는 종소리와 기도와 성가 그리고 훈계로 가득 찼다.
그리고 하느님은 갑자기 집 하나도 없게 되셨다.
하느님은 사물을 우리 눈앞에 갖다 놓으심으로써
그것들을 감추신다.
들어라, 새의 노래를
나무들 속에서 이는 바람 소리를
바다가 부르짖는 소리를
보아라, 마치 처음 보듯이
나무 하나를
떨어지는 잎 하나를
꽃 하나를
너는 문득 만날지도 모른다.
실재를
어린 시절에 떨어져 나와 우리네 지식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저 천국을
인도의 신비 가 사라하의 말 :“지식의 부재라는 이 은총의 맛을 알아라.”
(앤소니 드 멜로/분도출판사.개구리의 기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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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집에 대한 열정으로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내쫓으십니다. 이는 하느님 성전으로서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채 장사 터로 변하고 도둑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을, 새롭고 참된 하느님의 성전으로 다시금 되찾으시려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예수님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다시는 허물어지지 않을 새롭고도 참된 성전을 세우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오늘 성 체사리오 주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성전은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그렇지만 그리스도 교 백성들은 거기에서 영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로 여겨지는 성전의 축일을 지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처음 태어날 때 우리는 하느님 분노의 그릇이었지만,다시 태어날 때에 자비의 그릇이 될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 출생은 우리를 죽음에로 이끌고, 두 번째 출생은 생명에로 되불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세례 받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마귀의 신전이었지만 세례를 받은 후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 좀 깊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하느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성전이나’ 나무와 돌로 만들어 진 집에서 ‘거하지 않고’ 특히 만물의 창조자께서 당신 손으로 또 당신의 유사성에 따라 지어내신 인간의 영혼 안에 거처하십니다.위대한 바오로 사도는 말했습니다. ‘하느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 분 자신이 바로 그 성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우리 마음에서 마귀를 쫓아내고 우리 안에 당신 성전을 마련해 주신 만큼, 우리의 이 성전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의 악행으로 인해 아무런 훼손도 입지 말아야 합니다.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 해를 입힙니다.먼저 말씀 드린 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전 우리는 마귀의 신전이었습니다.그 후에 하느님의 집이 될 영광을 받았습니다.그것은 하느님 친히 우리를 당신의 거처로 만들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이란 눈에 보이는 건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 자신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느님 성전인 우리들의 모습을 잘 건축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며, 보존해 나가야 합니다. 이미 건축된 성전에도 시간이 갈수록 보수가 필요하듯이, 하느님 성전인 우리들 역시 보수가 필요합니다. 현재 나 자신의 모습이 하느님 성전으로서 튼튼한지 진단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 : 고준석 신부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사는 동안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며 영원토록 있는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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