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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담배꽁초와 전교 - 주상배 안드레아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6 조회수90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담배꽁초와 전교. 


   점심을 막 끝내고 자동차로 명동성당에 가는 길에 서울역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길이 막혀 가질 못하고 기다릴 때였다. 그런데 저만치 옆줄에 서있는 그랜져 승용차 뒷좌석에 탄 녀석이 창문을 반쯤 열고 크윽 ~ 캬악 하더니 허연 어리굴젓을 '퉷'하고 내뱉고는 담배꽁초를 탁 던져버려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미간이 찌프려 지고 갑자기 속이 느믈느믈 한게 목구멍으로 신물과 함께 열이 확 받쳐오는 것을 느꼈다.


   좋은 차 뒷좌석에 탄걸 보면 그래도 지도층일 텐데… 원 저런 썩을 넘이 다 있나?  생각 같아선 당장 튀어나가 담배꽁초를 어리굴젓에 부벼 그 녀석 면전에 확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로만 칼라를 목에 두른 점잖은 신부가 아닌가? 하긴 힘도 없고 마음만 그렇지 막상 그럴 용기도 없다. 빌어먹을… 10년만 젊었어도 저걸 그냥…  


   아서라, 늙은 놈이 무슨 큰 봉변을 당하려고, 남들도 가만히 있는데, 에라 그냥 고개 돌리고 못 본체 한번 넘어가자.


   그런데 마음 한켠에선, "아냐, 이 사람아, 오히려 자네가 신부이기 때문에 더 더욱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신부가 어디 미사만 지내라는 것인가?  사회를 밝게 비추어줄 등불인데 한 지도자로서 이럴 때 가만히 있으면 자기  소임을 다 하는 게 아니지, 그러니 어서 가서 바로 잡아 주게, 그렇다고 누가 나가서 성질대로 싸우래?         


   그게 아니고 그냥 가서 조용히 집어만 오면 자네 할 일은 다하는 거야, 게다가 로만칼라도 했겠다. 마침 사람들도 다 보고 있으니 전교에는 아주 좋은 기회 일쎄, 오, 그래?               


   그렇다면 분명히 집어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도 용기가 쉬이 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가 스쳐 지나갔다. 성인께서는 어느 날 제자들에게 전교 하러 가자고 하셨다.


   제자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스승을 따라 나섰다. 헌데 하루 종일 마을 주변만을 돌아다니다 해가 저물자 그냥 수도원으로 향 하는게 아닌가! 이제나 저제나 하던 제자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스승이시여, 어찌하여 멀리 전교 여행을 떠나지 않으시고, 또 어찌하여 오늘 주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한마디도 안 하셨습니까?"  그때 스승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 그대가 어디 있던 그곳에서 만나는 이에게 전교 하라. 오늘 우리가 물도 얻어먹고 옷값도 물어보고 길도 가르쳐 주고 했지만 그들이 우리의 대화와 행동 속에서 주님과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로만 전교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하셨다.


   "그래, 백번 옳은 말씀이야. 자, 이젠 그만 갈등의 불을 끄자."


   나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는 담배꽁초를 점잖게 집어 들고 차 안에 그 친구를 힐끗 보니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뜻이겠지, 암, 사람이라면 저도 나름대로 느꼈겠지…


   꽁초를 들고 오는데 대열 저 끝에까지 많은 이들이 로만 칼라를 한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옆에 탄 사람과 웃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 왔다.             

 

 

   아마 그 광경을 본 많은 이들이 그날 저녁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오늘 낮 서울역 앞에서 신부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할 것이고 그때 그 가족들도 머리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천주교 얘기도 나올 테니, 얼마나 전교가 잘 된 것 인가! 


    "으∼음, 그래, 꽁초 줍기를 참 잘했구나! 이번일도 내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선물이시겠지? "  차가 막혀 그저 짜증스럽게 흘려버릴 수도 있는 무미건조한 순간들을 오히려 전교라는 좋은 열매로 맺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감히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은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형제 , 자매 여러분 사랑합니다!

    

   주님 안에 즐거운 한 주간 되세요.^^*

 

 † 주상배 안드레아 광장동 주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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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Arms of Angel - David London
주상배 안드레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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