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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탓이요!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8 조회수876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순 4주간 토요일 - 내 탓이요!

 

무릎팍 도사 장서희편을 보았습니다. 장서희 씨는 지금 최고 시청률을 달리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아내의 유혹도 보지 않았고 장서희 씨가 누군지도 잘 몰랐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방송 출연을 했으나 함께 데뷔했던 동료들이 주연을 꿰차고 잘나가는 반면 장서희 씨는 10년이 넘도록 단역만을 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사람이 잘 찾지 않는 MBC 청사 지하에 있는 화장실을 자신의 아지트로 정해놓고 수시로 그 곳에 내려가 울곤 하였다고 합니다.

드디어 2002년 ‘인어 아가씨’가 대박이 나자 그 해에는 모든 상을 휩쓸었고 상을 받은 후에는 그 화장실로 다시 내려가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역으로 ‘일일극의 여왕’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2009년 SBS 연기대상의 유력한 대상후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십몇 년을 단역과 설움 속에서 있을 때 자신만 왜 그래야하냐는 생각에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기 힘든 그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게 해 준 힘은 바로, ‘그래, 다 내 탓이다!’라는 마음을 가질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남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면 남 탓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또한 나에게 일어나는 것 중에 나의 탓이 하나도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남의 탓만 하다 보니 힘든 것입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하면 세상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낼 힘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는, 내 탓이요, 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겸손이고 겸손은 성령의 에너지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자신이 변하면 세상도 덩달아 변하게 됩니다.

장서희 씨만이 아니라 비디오 사건으로 스타덤에 있다가 갑자기 침몰했었던 가수 백지영 씨도 여자로서는 견디기 힘든 수치스러운 사건을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힘은 바로, 남의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대는 핑계에 자신이 설득당하고 맙니다. 즉, 내가 누구를 미워하게 되면 반드시 그 안에 나의 잘못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대방만 욕하다가 끝나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구구절절이 다 맞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똑똑한 사람들과 단순한 사람들이 대비되어 나옵니다.

군중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인정하지만 어떤 이들은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하며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서는 반박을 하지 못합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경비병을 보내어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경비병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라고하며 그 분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율법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판결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공부한 사람들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배운 사람 중에 니코데모가 그들의 말에 반박합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역시 말로는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도 이 말을 듣고는 입을 다뭅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왜냐하면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고 불평하고 남을 험담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반박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마르틴 루터도 가톨릭교회를 반박하며 교계제도나 성모님, 성체 성사 등을 모두 인정하지 않으면서 반박하려면 해 보라고 대담하게 나왔지만 당시엔 누구도 그의 이론을 뒤집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면 ‘내가 왜 죽어야 돼.’하며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모든 사람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특별히 힘들고 어려울 때 남의 탓만 하지 맙시다. 그것이 이성적으로는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졌다면 ‘내 탓이요!’라고 하며 자신을 변화시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내 탓이요!’는 단순함의 시작이고 자신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고 믿음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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