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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령님과 생식력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9 조회수815 추천수12 반대(0) 신고

 

 

 

사순 5주일 - 성령님과 생식력

 

도자기를 잘 만드실 줄 아시는 한 신부님을 압니다. 한 번은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오셨기에 저는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분은 도자기를 만들다가 손이 베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손이 그렇게 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물레질을 하면서 손으로 도자기 모양을 만드는데 그 흙 안에 아주 작은 모래알 하나만 들어있어도 손이 베게 되어있어. 도자기는 물레 위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돌고 있거든. 작은 모래알 하나라도 마치 칼처럼 만지는 손에 상처를 낼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처음부터 아주 고운 흙만 채로 잘 걸러야 해.”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시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도자기공으로서 우리를 쓸모 있는 그릇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우리 자아를 산산이 부수는 일입니다. 자아가 산산이 부수어진 사람은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오상의 비오 성인도 마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즉시 “나의 자아가 곧 마귀입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거든 “자기 자신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자아가 깨진 사람들은 매우 겸손해져서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자신을 온전히 부수지 않고 주님께 자신이 좋은 그릇이 되도록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그 깨지지 않은 자아의 날카로운 면이 주님의 손에 상처를 내게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형태를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불에 구워질 때 그 덩어리 때문에 갈라지고 깨져 쓸모없는 그릇이 되고 맙니다.

 

만약 온전히 자신을 죽여 주님 뜻대로, 그리스도의 모습대로 산다고 해도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만드시려고 하는 목적은 그릇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그릇을 유용하게 사용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때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십니다. 거기에는 정결예식을 위한 약 100리터들이 항아리 6개가 놓여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붓도록 명령하십니다. 종들이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붓자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하였습니다. 그 포도주덕에 혼인잔치가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혼인하기 위해서 가장 절대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처음 하느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빚어 만드실 때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것이 성령님이고 사랑입니다. 아담은 그 성령님을 잘 간직할 수 있는 흠 없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아담은 저주받은 흙처럼 생명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깨져버린 인간은 자신들끼리 새로운 창조를 시작합니다. 즉, 육체의 사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죄를 짓고 곧 자신들의 음부를 가린 것처럼 성관계 안에는 이미 원죄의 굴레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을 탄생시키지만 그 생식력은 원죄에 물들어있기 때문에 원죄에 물든 자녀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만약 성모님이 아니었다면 이 굴레는 깨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죄에 물들지 않은 여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 여인은 완전한 성령의 그릇이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라고 인사할 때 이 ‘은총’이 바로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원죄가 없으셔서 성령의 생식력을 가장 충만하게 지니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요셉과 부부관계를 가졌다면 성모님도 그 후손도 다시 원죄의 굴레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래서 ‘평생 동정’이신 것입니다. 평생 동정은 원죄 없으신 분이시기에 그 원죄 없음을 지키기 위한 아주 당연한 성모님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한 생식력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세상의 생식력은 동정을 잃음으로써 실현되지만 영적인 생식력은 순결한 동정성을 통해서 실현됩니다. 성모님의 순결한 태중에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완전한 생식력을 갖추셨고 그 생식력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시고 낳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성모님의 모델대로 물이 새지 않는 그릇을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할 수 있는 온전한 자기 비움입니다. 따라서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 자신들도 먼저 자신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은 곧 고통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의 열매이고 그 열매는 또한 깨끗해진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겨져 우리가 새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잘 만들어진 도자기가 뜨거운 불을 이겨내야 단단한 항아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아픔 없이는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안에 생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하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고통 안에서 성숙시키시고 단련시키십니다. 이 고통을 이겨 낸 사람은 가나의 혼인잔치의 한 항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항아리에서 물이 술로 변화되었습니다. 술은 바로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그 성령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생명을 주게 됩니다. 이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혼인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통해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도 되셨습니다. 당신의 생식력으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서 우리들을 낳으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의 예수님과 성모님은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키는 새로운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물로 새로 태어난 요한에게 “이것보아라.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라고 하신 것은 두 분의 완전한 결합으로 첫 자녀가 탄생하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정결례에 쓰는 물 항아리가 여섯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그 목적으로 부서지고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정결례란 바로 죄의 용서를 통한 새로 태어남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을 깨끗이 하고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생식력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깨끗해짐이 곧 세례를 의미하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으시며 그 발을 씻어야만 당신과 관계가 있어진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 되도록 만드시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물 항아리가 여섯 개만 있었을까요? 성경에서는 7이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 이유는 완전한 물 항아리의 원형인 성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성모님의 모습대로 만드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새로운 그리스도들을 탄생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생명력, 생식력을 잘 묵상하며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깨닫는 사순절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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