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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출발" - 3.3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30 조회수637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3.30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다니13,1-9.15-17.19-30.33-62 요한8,1-11

                                                            
 
 
 
 
 
"새 출발"



과거를 묻지 않는 하느님이십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용서하시어 새 출발을 명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새 출발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과 관련되어 떠오른
아침 성무일도 시편 중 두 구절입니다.

“억눌린 자 의지할 곳 주님이시며,
  궁할 때 든든하신 피난처이니
  주는 당신 찾는 자들을 아니 버리시기에
  아옵는 자 당신께 바라오리다.”

오늘 독서의 수산나와
복음의 간음하다 잡혀 온 여자의 처지가 똑 같습니다.
 
사면초가의 위급한 상황입니다.
 
시편 말씀대로 주님은 궁할 때 든든한 피난처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는 삼국지에 나오는,
다 죽게 된 사마의 부자를 구해내는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제갈공명의 예화가 생각납니다.
 
아무리 사람이 일을 꾸며도
하느님은 당신 뜻대로 이루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입니다.
 
인간의 한계와 더불어 하느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바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1독서 중 수산나에 대한 다음 묘사가 호감이 갑니다.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의 여인’ 수산나임을 감지케 하는 대목입니다.
 
주님은 수산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다니엘이라는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시어
두 원로의 음모로 곤경에 처해있는 수산나를 살려내십니다.
 
하느님의 사람 다니엘의 명쾌한 판결에 대한
온 회중의 다음 반응도 아주 고무적입니다.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수산나처럼
오직 당신을 경외하며 당신께 믿음을, 희망을 두는
기도의 사람을 살려내십니다.
 
복음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 역시
사면초가의 상황에 내면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불쌍한 여인을 앞에 둔 예수님의 처지 또한 진퇴양난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고발을 받아드리면 무자비한 처사가 되고
또 거부하면 율법을 어기는 처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역시 주님은 천상 지혜를 지니 신 분입니다.
 
자비와 연민의 주님을 만난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자비와 연민의 마음은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바로 여기서 샘솟는 천상 지혜입니다.
 
주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대신
침묵 중에 땅에 무엇인가 쓰시며
이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면을 돌아 볼 기회를 주십니다.
 
아마 무엇인가 쓰시며 이들의 죄악을 생각했을 것이고
불쌍한 여인의 운명에 깊이 동참하셨을 것입니다.

침묵의 사랑이요 침묵의 지혜입니다.
 
침묵의 사랑에서 샘솟는 지혜와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단죄하려는 유혹이 들 때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시며, 몸을 굽히시어
다시 침묵 중에 땅에 무엇인가 쓰시며
거푸 이들이 자성할 기회를 주십니다.
 
마침내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고,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았다 합니다.
 
참 감동적인 주님과 만남의 장면입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마치 여인이 주님께 고백성사를 받고 훈시를 받는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아무도 단죄할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단죄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단죄하시지 않는데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간음하다 잡힌 여인인 죄녀는 바로 우리 모든 죄인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고백성사나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새 출발을 명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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