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월 22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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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5-22 | 조회수1,020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5월 22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요한 16장 20-23절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사노라면>
살아가다보면 매사가 비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죽을 지경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엄청 어둡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옵니다. 마주 앉아있기가 점점 두려워 집니다.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한번 입은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고 오래 갑니다. 그 어떤 위로 앞에서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빨리 떠나주었으면 고맙겠는데 느닷없이 찾아온 병고가 떠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지치기 마련이고, 삶이 비관적이 됩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순간순간이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도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미소를 짓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변에서 바라볼 때 ‘하느님도 무심하시지’하는 한탄이 절로 튀어나오지만, 정작 본인은 아름다운 정원을 천천히 거닐고 있는 황후처럼 우아하게 살아갑니다.
시련 속에서도 기쁠 수 있는, 고통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는, 비참함 속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근원적 기쁨’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쁨이란 주제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기쁨에는 여러 종류나 단계의 기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쁨이라고 다 같은 기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적인 기쁨, 스쳐지나가는 잠시의 기쁨이 기쁨의 전부가 아닙니다. 만수무강, 무병장수, 승승장구... 물론 이런 삶의 모습도 기쁨의 배경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기쁨은 자기 존재를 충만히 실현시키는데서 오는 기쁨이 아닐까요? 자신의 내면 안에 확고한 중심이 서 있음으로 인해 그 어떤 외부적인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데서 오는 기쁨이 참 기쁨이 아닐까요?
참 행복의 길, 참 진리의 길을 찾았기에 더 이상 헤매지 않고 수시로 다가오는 갖은 역경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데서 오는 기쁨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일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든든한 지주가 됨으로 인한 기쁨, 주님의 성령께서 내 앞길을 환히 밝혀주심으로 인한 기쁨, 그 기쁨이야말로 평생 우리가 추구해야할 기쁨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예수님 안의 참 기쁨은 한 인간을 치유하고 고무(鼓舞)시키는 힘이자 에너지입니다. 그 기쁨은 생명력을 낳습니다. 그 기쁨은 절망스런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하게 합니다. 그 기쁨은 깊은 슬픔 가운데서도 미소 짓게 합니다. 그 기쁨은 결국 우리를 생명과 구원에로, 창조자이신 하느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나날이 늘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서 돌아보면 많은 기쁨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삶 자체가, 하루하루가 기적이며 가장 큰 기쁨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김종삼, 어부)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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