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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4 조회수648 추천수11 반대(0) 신고

 

 

 

주님 승천 대축일 -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온 국민들이 충격과 슬픔에 쌓여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 사는 저희들도 적지 않게 놀랐고 비록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기에 기도 중에 기억도 했습니다.

그 분이 산에 오르기 전 새벽에 쓴 짧은 유서를 읽어보니 힘들어서 책도 읽을 수 없고 글도 쓸 힘도 없다고 했습니다. 평생 청렴결백을 모토처럼 말하며 살아온 입장에선 지금의 뇌물수수 조사는 그동안 쌓아온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해인 1993년 정몽헌 현대회장의 투신자살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당시 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대북사업을 위해 했을 수 있는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하여 특검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멸감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명예가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세상의 의심과 손가락질을 받고 검찰 수사를 받으면 그 모멸감과 절망감 때문에 죽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도 우리 명예를 훼손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들을 때는 발끈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내 자신이 그만큼 높아져있기 때문입니다.

높이 있으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중력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그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은 바로 이 중력을 이기는 신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온전히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자께서도 본래 육체를 지니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빈손으로 오셔서 육체를 더 얻어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썩어서 흙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정말 빈손으로 다시 하늘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실 때의 그 육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을 때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랑을 위해 내어놓으셨습니다. 가장 가난하셔서 태어나자마자 나무 구유 위에 뉘이셨고 돌아가실 때도 나무 위에서 벌거벗겨져 싸늘하게 죽어가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자 그 몸이 온전히 당신 것이 되었습니다. 육체는 무게가 나가서 땅으로 떨어져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수님은 그 육체를 하늘에서도 사실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하신 육체에 상처가 남아있었다는 말은 바로 그 분의 부활이나 승천이 당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순종, 또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온전히 바친 희생의 결과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기 삶의 모습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하늘로 어떤 사람은 땅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육체를 포함한 완전한 인간으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인간도 본래는 하늘에 살게 되었지만 죄를 지으면서 육체의 무게로 땅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죄를 짓고 “너 인간아,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또 땅도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게 되었고 죄 지은 인간은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늘과 땅이 분리되게 된 것이고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 ‘하늘과 땅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아닌, 그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신 분임을 우리가 언제 볼 수 있었습니까?

바로 물 위를 걸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무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엔 믿음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큰 물결을 보며 의심을 품고는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만 인간이 구원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인간은 자신의 육체의 무게를 없애고 중력을 거슬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믿음이 있으셨을까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아버지를 항상 보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또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예수님도 인간이 믿음으로만 구원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당신도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아버지,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는 것이 바로 아들이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지을 때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을 보속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아버지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볼 수 없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고, 그 믿음의 결과로 부활과 승천의 영광이 주어진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믿음으로 구원받아 당신처럼 하늘로 오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시면서 사람들이 당신을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당신이 아버지를 보지 못할 때 아버지께 대한 믿음의 공로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보이지 않는 당신을 믿어서 구원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길 수 있는 것일까요? 믿음은 은총입니다. 즉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 선물은 또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선물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모님과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하던 곳에 성령님이 내린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곳에 성령님이 오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승천과 성령강림이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승천은 당신이 보이지 않게 하셔서 당신을 믿을 기회를 주시는 것인데, 믿음을 주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미 성령강림 9일기도를 금요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하늘로 멋지게 올라간 엘리야를 상상해 봅시다. 엘리야는 불가마에 실려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불가마는 성령의 세례를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성령 충만함으로 얻은 믿음으로만 우리 자신이 무거운 죄의 땅에서 가볍고 행복한 하늘로 오를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승천하셨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보이지 않아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모님과 사도들이 한 방에 모여 성령님의 오심을 기다렸듯이 우리들도 믿음을 더 굳게 하여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오심을 잘 준비하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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