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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31일 성령 강림 대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31 조회수851 추천수18 반대(0) 신고
  
 

 5월 31일 성령 강림 대축일 - 요한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내 인생의 동반자 성령>


   요즘 형제들과 밭을 빌려 농사를 조금 짓고 있습니다. 다들 '왕초보'라 문제가 많습니다. 열심히 씨를 뿌리기는 하는데 여간해서 싹이 안 올라옵니다. 이것저것 모종을 심기는 하지만 간격도 안 맞고, 또 뭔가 어색합니다. 보다 못한 '프로'들께서 한마디씩 거드십니다.


   "자네들, 무슨 모종 장사할 일 있어? 고추모종을 왜 그렇게 빽빽하게 심었어? 그리고 저기, 호박모종을 이랑 한 가운데다 줄줄이 심어놓으면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뭔 야채 박람회야? 상추, 케일, 토마토, 가지, 오이, 쑥갓… 없는 게 없구먼,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자주 야단을 맞다보니 저는 가급적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제일 먼 쪽에 앉아 일하지요. 요즘은 꽤 키가 커진 고추모종에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때 이른 한낮 더위에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진 고추모종들을 하나하나 다시 일으켜 세워주며, 또 갈증을 해소시켜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느님 손길이 아마 이러했겠지요. 제대로 걸어 다닐 힘조차 없어 비틀거리던 나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시며 지척에서 따라다니시던 분, 혹시라도 넘어지면 비호처럼 달려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던 분, 다시금 살아갈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시던 분… 돌이켜보니 많은 경우 그런 하느님 손길은 마치 미풍처럼 불어오는 성령을 통해서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성령께서 내 안에 어떻게 활동하시는가?'란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였는데, 점점 진지해지더니 나중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이 다들 걸어가는 넓은 길을 굳이 마다하고, 이 좁디 좁은 길을 택해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후배들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름대로 꽤 많은 영적진보를 이뤄냈다는 마음에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한 형제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과 신앙, 하느님과 관계를 총정리 하는 '영적자서전'을 써나가면서 평소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성령의 이끄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길이었지만 굽이굽이, 곳곳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셨음에 감사의 눈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가야할 길이 너무도 막막해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아서,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 심각한 성소의 위기 상황 앞에 섰을 때, 성령께서는 형제들로 변장하고 나타나셔서 자신을 위로해주시고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저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죄로 기울어져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오랜 방황 속에 허덕일 때,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는 몰랐는데, 조금 빠져나와서 바라다보니 손을 내밀어주시던 성령께서 계셨습니다. 늦게나마 성령의 손길, 성령의 자취를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둔감해서, 우리가 너무 육적으로 살아서 잘 감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손 내밀면 언제라도 잡아줄 수 있는 지척의 거리에서 우리와 함께 걸어오신 분이 성령이심을 인정합니다.


   사실 우리 영혼의 도우미이자 보호자이신 성령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감각이 온통 육적인 것에 몰두해 있기에, 우리 안테나가 온통 세속을 향해 있기에, 우리 시선이 전부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기에, 그분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순간 체험하게 될 은총은 놀라운 것입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하느님 자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죽음과도 같던 현실이 '살아볼만한, 견뎌볼만한 현실로 변화할 것입니다. 꼴도 보기 싫었던 인간들이 그저 안쓰러운 인간, 측은한 인간, 감싸주어야 할 인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기적의 원동력, 우리 신앙을 한단계 성장시켜줄 활력소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보호자,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50번 / 모든 은혜 근원이신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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