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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6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01 조회수404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의 충격 때문에 그동안 묵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시기가 어제로 끝나고 연중시기를 맞이한 우리의 전례력의 의미를 생각하며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무척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은 부득이 이번 애도기간의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소작인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며, 종은 많은 예언자들이며, 주인이 마지막으로 보낸 외 아드님은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예수님은 이미 죽음을 알고 계셨지만 그 죽음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토록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타인의 손에 의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손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 남았을 뿐입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우리 민족을 구했지만 당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를 확인하고 유탄에 맞아 전사한 것은  스스로 전사를 택한 것으로 요즘은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살자에 대하여는 추도미사를 봉헌하지 못한다는 교회법에 대하여 이번 애도기간 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1983년 개정된 교회법에서는 자살자에 대한 추도미사를 금지한 조항은 삭제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국 천주교의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명동성당에서 추도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허락한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 교회는 개정된 교회법을 수용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하여는 더 이상 논란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참고로 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며 죽은 망자에게 법을 적용하는 것은 현대판 부관참시라 할 것입니다. 망자는 법 적용의 대상이 아니며 그 심판은 오로지 하느님의 몫이고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하며 구원의 기도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가장 버림받은 영혼'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이런 단어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생명체를 창조하실 때에는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으며 이 원칙이 훼손되면 그 種은 스스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원칙 중의  하나는 스스로 생명을 끊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자살하는 생명체는 그 어떤 種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예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죽했으면 자살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모두가 타살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죽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이런 일은 수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길밖에는 다른 예방책이 없어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 종교가 존재해야 하고 또, 이런 영혼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의 하나인 진혼입니다. 이런 진혼을 포기한다면 이는 종교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므로 모든 종교에는 이런 진혼예식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창조의 원칙은 동종이 동종을 먹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원칙을 어기면 그 종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에 의해서 이 원칙이 파괴되어 생겨난 재앙이 바로 광우병입니다. 소가 소를 먹었기 때문에 일어난 재앙입니다. 또 다른 원칙은 동종교배원칙으로 이종 간에는 교배를 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종 간에 교배가 일어난다면 그 종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살을 미화하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우리 동양적 관점에서는 이와 다른 가치관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소신공양을 최고의 공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살아서 소신공양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죽어서라도 소신공양을 하는 것이 불교의 장례의식입니다. 우리 신앙에서는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고 화장을 하게 되면 교회법상으로는 장례미사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으므로 지금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교회법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할복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민족 자존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서 자결한 이 준 열사에 대하여 자살하였다고 하여 하느님께 대죄를 지었다고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살을 우리 신앙에서 용인하지 않는 것은 하나뿐인 생명은 그 무엇보다 존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우리는 내 생명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도 똑같이 존귀하다는 것을, 내 인격이 중요하면 타인의 인격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애도기간을 통하여 새롭게 조명된 故 노무현 유스토 형제님을 보며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이고 성령 강림사건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성경은 종교적 경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앞으로는 보다 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며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하느님의 소유라는 것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하지만 이를 모르고 하느님의 아들마저 죽이는 이러한 우리의 잘못을 반성하는 복음이 되기를 소원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따르는 저희들은
자비보다는 율법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이번 애도기간을 통하여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율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저희와 저희 교회에
자비의 성령님이 언제나 함께 해 주시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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