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 3일 수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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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6-02 | 조회수855 | 추천수19 | 반대(0) 신고 |
6월 3일 연중 제9주간 수요일 - 마르코 12,18-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저물어가는 하루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시시각각으로 꺼져만 가는 어린 생명의 끝을 붙잡고 통곡하는 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의 얼굴은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다고, 그쯤 했으면 할 도리 다 한 것이라고,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그렇게 타일러도 소용없습니다. 단 하루라도 더 붙들고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세상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모릅니다. 안타까움 중에 가장 큰 안타까움은 어린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겠지요? 청춘의 나이에, 활활 타올라야할 절정기에 이 세상과 작별하는 일이겠지요.
사실 더 큰 안타까움이야 남아있는 분들의 몫입니다. 먼저 가신 분들보다 몇 백배 더 큰 허전함으로, 상실감으로 한 평생 가슴 시릴 분들도 많습니다. 밤마다 베갯머리를 눈물로 적시는 분들, 떠난 분들의 빈자리로 평생 마음이 허전할 분들,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 세게 틀어놓고 남몰래 통곡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가신 분들과의 인연을 돌이켜보며 떠난다는 것은 무엇이며, 남아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과 사, 남음과 떠남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사실 우리 역시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전혀 예측 못할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위를 걷고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 그 사이에 난 가파른 골짜기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습니다.
결국 먼저 떠난 분들, 다 하느님께서 계획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우리에게도 뭔가 하느님의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남아 있는 우리에게 정녕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사별의 충격에 늘 애통해하면서, 늘 가슴아파하면서, 늘 괴로워하면서 한평생 살아갈 것을 하느님도, 먼저 떠나신 분들도 절대 원치 않을 것입니다.
먼저 떠난 분들의 안타까움, 아쉬움, 섭섭함, 허전함을 우리의 사랑으로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떠난 분들이 못다 이룬 사랑을 우리가 대신 실천하는 일. 그분들이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대신 실현시키는 일, 그분들이 채 못 누린 행복을 우리가 대신 누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망자(亡者)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것입니다.
하루가 죽음처럼 고달플지라도 절대로 힘들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세상살이가 너무 힘겹다고, 사는 것이 너무 지루하다고 투덜대지도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단 하루의 삶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분들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단 1%의 가능성 앞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갈구하고 있는 분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맞이하는 아침, 보통 아침이 아닙니다. 너무나 소중한 황금 같은 아침입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가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 사실 축복 중의 축복이며, 눈물겨운 환희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가장 큰 선물이며 가장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다시금 눈떴다는 것, 커튼을 젖힐 수 있다는 것, 창문을 활짝 열수 있다는 것, 참으로 크신 주님 은총의 결과입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먼저 떠난 분들은 이제 자비로운 하느님 손에 맡겨졌습니다. 그분의 따뜻한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더 이상 울며 애통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 자비에 맡겨드리는 일, 끊임없이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 시선을 우리의 오늘에 돌려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살아있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이 땅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 아직 부족하기에 죄도 짓고 방황도 하는 우리, 그러나 아직 살아있기에, 다시 말해서 주님 은총의 손길 안에 있기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행복해하며 그렇게 살 일입니다.
저물어가는 하루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전해야 했었는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좀 더 실천했어야 했는데, 좀 더 행복하게 살아야 했었는데...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6번 / 온 세상아 주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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