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제로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주임신부님은 경험이 전혀 없는 새 사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나 역시 사제품을 받고 나서 첫 본당에서 만난 주임신부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 이분은 삶의 기준이 무척 엄격하신 분으로 교구 사제단에서도 유명했다. 부임하던 날 주임신부님은 신자들과 함께 나를 맞으러 나와서는 먼저 성당으로 가서 기도하신 다음 신자들에게 “새 사제의 손은 축성받은 손이니 안수를 받자.”고 하시더니 당신부터 제대 아래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았다. 마치 갓난아기와도 같은 새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는 신부님의 모습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새 사제에게 정성을 쏟으시는 신부님의 마음은 고해성사의 배려에서도 나타났다. 신부님은 “새 사제는 허니문 기간입니다. 그러니 초등부 어린이와 중고등부 학생들만 보좌신부님께 고해성사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신자들에게 공지하셨다. 그리고 그 내용을 써서 내가 들어가는 고해소 문에 붙여놓으셨다. 어찌 보면 과보호(?) 같지만 지금 생각하면 주임신부님의 깊은 배려에 고마울 뿐이다.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도 정말 신비로웠다. 긴 수염을 기르신 얼굴과 경문을 읽는 목소리와 손동작, 걸음걸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건함이 느껴졌다. 그 모든 것 하나하나를 얼마나 정성 들여 하시는지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해주실 때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신부님은 성체를 신자의 눈까지 높이 들어 올리시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신다음 천천히 내려 신자의 손바닥에 꼬옥 눌러주신다. 이렇게 영성체를 하는 신자들은 성체의 신비스러움을 깊이 느끼며 머물게 된다.
또 수많은 성인들의 상본을 가지고 계시면서 축일을 맞은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신다. 신자들에게 돈이나 상본, 서류를 주실 때도 항상 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잘 봉하고 만년필로 ‘찬미 예수님!’이라는 인사말과 성경 말씀이나 축복의 말씀을 정성껏 써주시고, 어떤 손님이 오시든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차 한 잔 대접하는 친절한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군종신부로 있을때도 고생 많다고 격려해 주셨고, 전역해서 교구로 돌아오니 자랑스럽다고 포옹을 해주셨다. 돌아보면 새 사제일 때 주임신부님을 모시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새 사제가 훌륭한 사제가 되기를 바랐던 신부님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한평생 사제로서 원칙을 고수하면서 살아오신 신부님께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여 원로사목자로 계시는 신부님을 가끔 찾아가 옛정을 나누며 함박웃음을 짓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최인섭 신부(청주교구 오창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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