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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14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3 조회수796 추천수16 반대(0) 신고
  
 

 6월 14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마르코 14,12-16.22-26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우리 인생의 핵심 주제 성체성사>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신자들 얼굴을 마주보게 됩니다. 한 명 한명 얼굴을 쭉 한번 훑어보면 천차만별입니다. 미사가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승리의 잔치, 구세주 하느님께서 죄 많고 부족한 우리 인간에게 오시는 감사의 축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구원의 전례이기에 당연히 행복에 겨워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얼굴들도 많습니다.


   주일미사가 의무라니, 빠지면 귀찮게 고해성사를 봐야하니 어쩔 수 없이 오셔서 '제발 좀 빨리 끝나라'는 표정들도 눈에 띕니다. 더 심한 분들은 도대체 의욕이 없는 분들입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소가 닭 바라보듯이 멀뚱멀뚱 바라봅니다. 심드렁한 표정입니다. 흥미도 반응도 없습니다. 때로 연옥벌이라도 받는 것 같은 모습의 신자들도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는 표정도 눈에 띕니다. 진지한 얼굴, 단정한 자세, 미사 전례의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려는 경건한 모습입니다. 마치도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미사인 듯 정성이 지극합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성체성사는 속죄의 제사, 희생의 제사, 십자가의 제사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기쁨의 축제입니다. 따라서 미사가 거행되는 시간은 환희의 순간입니다. 감사의 순간입니다. 은총의 순간입니다. 부족한 죄인들이 천상잔치에 참여하니 너무도 기쁜 나머지, 너무도 감사하고 은혜로운 나머지 감격에 겨워 눈물이 흐르는 은총의 순간이 미사입니다.


   '성체성사의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만년에 이르러 그 힘든 상황에서도 죽기까지 성체성사와 끈을 놓지 않으셨던 분, 그래서 그분께서 세상에 보낸 마지막 편지 역시 성체성사가 핵심주제였습니다.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분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지가 벌써 꽤 지났네요. 만년에 이르러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지요. 위급한 순간마다 자주 가시던 병원이 로마 시내에 위치한 제멜리(쌍둥이란 의미) 병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원하셨던 2005년 3월 성목요일을 기해 교황님께서는 당신이 극진히 사랑하셨던 모든 사제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이 편지 주제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저는 이 편지를 고이 간직하고 틈날 때 마다 꺼내서 읽어보곤 합니다. 교황님 유서다 생각하면서. 그 내용이 너무나 감동 깊고, 또 의미심장합니다.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저는 다른 환자들과 나란히 병원에서 회복을 기다리며 성찬례를 통해 저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에 일치시키면서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온 교회가 성찬례에서 생명을 얻으므로, 사제의 삶은 더욱 성찬례로 구현되는 삶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제들에게 '성찬 제정문'은 축성문 이상의 것, 곧 '생명의 조문'이 돼야 합니다."


   "성체성사 때 모두 경건히 침묵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엄한 말씀을 되풀이할 때 우리 사제들은 이 구원의 신비를 전하는 특별한 전령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찌 설득력 있는 전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제들을 향한 교황님의 충고말씀은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너무나 행복해하는데, 구원의 방주에 오른 것이 너무나 기뻐서 저리 감사하는데, 정작 가장 성체성사 가까이 서 있는 저, 매일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저는 별 감흥이 없던 때가 많았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는 성찬 제정문을 낭독할 때마다 이런 마음을 지녀보고자 노력하렵니다.


   "나를 구워먹든지 삶아먹든지 어떻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를 이용해도, 돌아서서 험담해도, 나를 구박해도 나는 묵묵히 견딜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런 나를 통해 무한히 자비하신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느끼시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에 굶주리고, 허기와 갈증에 허덕이는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고맙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의 몸은 은혜롭게도 늘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성체성사 그 한가운데 자리 잡고 계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62번 / 성체 성혈 그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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