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6.19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호세11,1.3-4.8ㅁ-9 에페3,8-12.14-19 요한19,31-37
"사랑의 샘"
예수 성심은 사랑의 샘입니다.
“이 끝없는 사랑의 샘에서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게 하소서.”
미사 시 본기도처럼
예수 성심의 사랑의 샘에서 은총을 받고자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시편 62장을 요약한
‘주님을 목말라 하는 인간’이란 주제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간에 대한 참 적절한 정의이다 싶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첫 후렴도 좋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시어
“목마른 자는 다 내게 와서 마시라.”하고 외쳤도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목말라 한다는 말은
바로 사랑을 목말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내 사랑 부족으로 귀결됩니다.
내 사랑이 부족한 탓에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입니다.
사랑은 생명이요 빛입니다.
사랑할 때 활기차고 빛나는 삶입니다.
사랑이 사라질 때 죽음과 어둠에
허무하고 무기력한 삶입니다.
살아있어도 실상 죽어있는 삶입니다.
하느님을 목말라하는, 사랑을 목말라하는 인간입니다.
예수 성심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그 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피는 성체성사를,
예수님의 물은 세례성사를 상징한다 합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예수성심의 사랑의 결정체인 성체를 먹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바로 이런 똑같은 주님이
우리를 이 거룩한 미사에 초대해 주시어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에 사시게 되고,
우리는 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갈수록
우리 역시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부단히 정화시켜 주고 성화시켜주는 예수성심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얕고 좁은 사랑을
부단히 깊고 넓게 해주는 예수성심의 사랑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변모되어 가면서
점차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을 통해
예수성심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 감동 깊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예수성심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 자발적으로 기쁘게
주님 위한 백절불굴의 순교적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 또한 예수성심의 사랑의 샘이 되어 살 수 있게 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요한7,37-38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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