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7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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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6-22 | 조회수49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12주일 월요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용산 참사현장에 계신 우리의 사제 분들께서, 연로하신 신부님과 단식 중인 신부님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경찰에게 연이어 폭행당하는 참담한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신부님이 무슨 힘이 있으며 단식 중인 신부님이 무슨 힘이 있어 무슨 일을 하였기에 경찰이 그 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는지 우리 교회는 그 진상을 조사하여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공개해야 합니다. 폭력 용역에게 폭행당한 사실에도 침묵한 결과로 이제는 경찰에게 까지 폭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강서 신부님은 빈민사목 위원장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시다가 연일 폭행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참담한 실정임에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한가롭게 복음을 묵상하는 제 자신이 바로 위선자가 아닌가 하는 그런 자괴감이 들고 있습니다. 주간 복음으로 산상설교를 한동안 묵상하다가 지난 금요일에는 '예수 성심 대축일'과 관련된 복음을, 토요일에는 '성모 성심 축일'과 관련된 복음을 묵상하고 오늘은 다시 산상설교의 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입장에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순서대로 묵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복음은 전례 중심으로 선정하고 있으므로 이 점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의 복음 선정은 특히 연중시기에는 큰 틀에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순서대로 복음을 선정하고 있으나 대축일 또는 기념일의 경우에는 그날 전례에 적합한 복음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날 순서에 해당하는 복음은 순서가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대축일과 관련된 복음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로 마태복음 6장은 1-18절 까지만 묵상하고 19-34절의 말씀은 묵상하지 못하고 오늘은 7장의 첫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탓 한다.'는 우리 속담과도 같은 말씀이고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동일하므로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이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라는 말처럼 남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자신에게는 고무줄 잣대를 적용하고 있으므로 우리 자신에게는 오히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남에게는 자비와 사랑의 잣대를 적용하라는 가르침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기준이 되는 잣대가 몇 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힘 없는 자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힘 있는 자에게는 고무줄 잣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위선자라고 하였는지 그 대상이 불분명합니다. 산상에 모인 군중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자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장차 사도가 될 제자 분들도 계시며 율법학자들과 또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바리사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그리고 대부분의 군중은 깨어있지는 못하였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민중들이었을 것입니다. 게시된 오늘 복음에 의하면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로 시작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므로 '그 때에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말씀하셨다'로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산상설교를 묵상하는 요즘 내내 게시된 복음을 보면 이런 잘못을 연일 계속하고 있지만 그동안은 굳이 이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부득이 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위선자는 바로 제자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잘못된 결과가 발생되지 않도록 복음을 게시할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그 대상을 분명하게 해 줘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군중들에게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복음을 알려주시며 또 한편으로는 율법학자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위선자라는 사실을 민중들에게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위선자인 너희 율법학자들이 어떻게 민중들을 선도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진정성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만 앉자 있으면서 민중들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민중들을 선도한다는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사람 못된 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사실을 숱하게 경험하였습니다. 인정 많고 의협심 많고 실력 있는 자들은 모두 도태되고 몰인정하고 윗사람에게 아부 잘하고 실력도 없는 자들이 대부분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조직을 이끌고 있으므로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윗사람의 지시를 따르고 있지만 존경심은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자들이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고 있으므로 위선자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최근의 사건은 국세청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게시하였다가 파면까지 당한 사건입니다. 게시판에 글 한편 올렸다고 파면까지 시키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런 실정이므로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의 잘못을 고발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할지라도 율법학자들을 위선자로 고발하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따르다가 핍박받는 사람들을 우리 교회는 보호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는 이를 고발하는 우리 사제들마저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줘야 할 교회가 오히려 저희들이 교회를 걱정해야 할 형편에 이른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하셨습니다. 아마 하느님의 입장에서 저희의 잘잘못을 판단하시면 모두가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서로가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하고 있으므로 한심할 것입니다. 이런 실정이므로 남을 심판하기에 앞서 남의 잘못을 보고 내 자신도 그렇지 않는지를 반성하라는 가르침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를 실천한 경우가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과음하여 실수도 많이 했지만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보며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절주를 시작하여 이제는 술 먹고 실수하는 나쁜 버릇 하나는 고친 것 같습니다. 소주 두 세병이 정량이었으나 이제는 두 세잔으로 줄었으므로 술 때문에 실수하는 일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三人行, 必有我師)하였습니다. 이처럼 술 먹고 실수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내 스승이므로 남을 심판하기에 앞서 그 잘못을 보고, 선행을 보고 우리 자신을 반성해야 오늘 복음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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