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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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7-04 | 조회수978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마태오 9,14-17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하느님께서 주신 휴가>
얼마 전 혼배성사를 집전하면서 정말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따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나 간소하고 소박했습니다. 양가부모와, 형제자매들, 그리고 증인들, 모두 합해봐야 스무 명도 채 안 되었습니다. 멋들어진 결혼식을 준비할 형편이 안 되서 그렇게 한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차분한 가운데, 보다 결혼식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답니다.
적어도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알려야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결혼식 끝난 후에 사진과 함께 결혼했노라고, 기도해달라는 내용이 적힌 안내장을 보낼 것이라고.
또 다른 결혼식에 갔었는데, 축의금을 받지 않더군요. 한 편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죽어도 내야겠다고 떼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죽어도 받지 않더군요. 대신 결혼식이 끝난 후 인도된 곳은 뷔페식당이 아니라 국물 맛이 ‘죽이는’ 잔치국수 한 그릇만 차려진 교실이었습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 한 목소리로 맛있다고, 정말 좋았다고, 말들을 했습니다.
결혼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두 당사자의 마음, 결국 그들의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결혼식 너무 복잡해졌더군요. 결혼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의 부담(과중한 혼수 준비)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허리가 휘청할 정도의, 격에 맞지 않는 지나친 결혼식 참으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사자나 가족, 하객들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결혼 문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인데, 뭔가 진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결혼식에 이어지는 혼인잔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잘 차려진 5만 원 짜리 뷔페일까요? 수많은 하객들일까요? 좋은 주례사일까요?
보다 중요한 것이 분위기이겠지요. 새롭게 출발하는 두 사람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축하해주는 ‘축제 분위기’일 것입니다.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 가시적인 표현으로 술잔도 기울이고 음식도 함께 나누는 그런 가족적인 분위기일 것입니다.
축하해주러 온 사람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축하연에서 큰 소리를 지른다면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다고 화를 낸다든지 갖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면 마치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차려진 음식이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잔뜩 인상 구기고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면 그것도 할 짓이 아닐 것입니다.
혼인잔치에 손님으로 왔다면 다른 것 없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경사에 함께 기뻐할 일입니다. 차려진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길 일입니다.
유다 문화 안에서 또 성경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두드러진 흔적 하나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혼인관계로 자주 묘사한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인간 세상 도래는 하느님과 인간이 혼인한 것과 유사합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연인이자 신부(新婦)인 우리 각자와 혼인한 것이 메시아의 강생인 것입니다.
그 크신 하느님께서 자신을 극도로 낮추셔서 부족하고 덜 떨어진 인간과 한 몸 한 마음이 되셨다는 것, 생각만 해도 과분하고 송구스럽고 기쁘기 한량없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기적입니다. 꿈같이 행복해서 펄쩍 펄쩍 뛸 일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은총을 베푸셔서 이 아름다운 세상에 잠시 소풍을 나온 천사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꿀맛 같은 첫 휴가를 나온 주님의 군사들입니다. 이런 우리가 우울하게 지낸다거나, 시무룩하게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너무나 과분한 선물로 주어진 지상이 축복의 시간, 좋아죽겠다는 얼굴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이토록 과분한 은총과 축복을 주님과 함께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나 됨, 하느님의 연인이 됨, 하느님의 신부(新婦)가 됨을 일생일대의 큰 기쁨으로 여기고, 평생토록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4번 주께 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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