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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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7-04 | 조회수802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마태오 10,17-2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빗자루 같은 사제>
후배 사제들의 첫 미사 참석 때문에 남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첫 미사 강론을 해주신 아버지 신부님들께서 얼마나 의미 있는 강론들을 잘 준비하셨던지...이틀 동안 들은 강론들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피정하는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제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있는 몇몇 말씀들을-새사제들에게 당부하신-잊을 수가 없어 소개합니다.
"고해소 안에서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한번 혼난 신자들이 다시 고백소를 찾겠습니까? 사제로서 가장 좋은 보속이려니 생각하시고 꾹꾹 눌러 참으십시오."
"혼배성사 때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가끔 신랑신부가 늦게 도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긴장한 나머지 실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사자들에게는 일생에 한번 있는 축복의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십시오."
"사제는 빗자루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빗자루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마당 쓰는 일)을 다한 후에 <내가 이만큼 열심히 일했는데!> 하면서 안방 한 가운데를 차지한 것을 보셨습니까? 빗자루는 빗자루일 뿐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 했으면 다시 자신이 있을 자리인 구석에 가서 서있지 않겠습니까? 신부님, 부디 구석진 자리에 서있는 한 자루 빗자루가 되십시오."
"20년이 지나서야 느끼는 바입니다. 사제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는 일입니다. 전기밥솥의 코드가 전원에서 뽑혀있는 상태에서 밥은 아무리 기다려도 지어지지 않습니다. 사제가 하느님과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끈을 연결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기도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따끔한 말씀이었습니다. 새 사제들을 향한 진심 어린 충고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신부님들 말씀의 요지는 결국 겸손한 사제, 예수님과 신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사제, 즉 김대건 신부님 같은 사제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첫 미사를 끝내고 신자들에게 강복을 드리는 새 사제들을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새 사제 신분으로 사제생활을 마감한 분이시지요. 사제생활 1년 1개 월 만에 순교하신 새 사제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성가를 부르거나 서한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짠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진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난 15세 어린 나이의 김대건 신학생에게 펼쳐졌던 상황은 장밋빛 탄탄대로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용기가 가상했고, 꿈은 컸었지만 중학교 2학년 나이, 여리디 여린 소년의 눈앞에 비춰진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낯 설은 이국 땅에서의 기약도 없는 유학 생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언어, 낯선 풍습 안에서 살아가던 어린 소년은 숱하게도 많은 밤들을 이역의 별빛 아래 눈물지으며 보냈겠지요.
그 숱한 슬픔의 나날을 잘 극복하고 서품된 김대건 신부님은 안타깝게도 입국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국에 체포되고 맙니다.
순교 20일전에 주교님에게 쓰셨던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한에 소개된 어머님과 관련된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합니다.
"저는 감히 주교님께 저의 어머니 울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주교님께 간절히 바라건데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1년 1개월, 짧디 짧았던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 생활은 그야말로 "환난과 역경, 박해와 굶주림, 헐벗음, 위험과 칼" 아래의 절박한 삶이었습니다.
관헌으로 압송되어온 김대건 신부님은 마치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처럼 극도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치욕을 당하십니다. 수 천대의 매를 맞았고, 조롱을 당했으며, 짐승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극도의 고통을 김대건 신부님은 얼마나 의연하게 잘 견뎌내셨는지 다음의 옥중서간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제게 이런 형벌을 주신 관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장께서 제게 내리시는 이 형벌을 통해서 저는 더욱 하느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관장 나리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빕니다.>
"저의 이 말을 들은 관장과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큰 소리로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 후에 여덟 자나 되는 긴 칼을 가져오기에 제가 즉시 그 칼을 잡아 제 손으로 제 목에 대니, 둘러섰던 모든 사람들이 또한 다 크게 웃었습니다."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하셨던 김대건 신부님, 죽음의 칼날조차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기꺼이 수용하셨던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김대건 신부님, 칼을 들이대는 사람에게조차 축복을 해주던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87번 /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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