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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빛과 소금으로 사십시오/김웅렬신부님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6 조회수758 추천수4 반대(0) 신고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빛과 소금으로 사십시오/김웅렬신부님

 

안녕하셨습니까?
예~~
어느 성당에든지 냉담자가 많은 것 아시죠?

평균 48~50%가 냉담입니다.

그리고 세례 받고 일 년 안에 쉬는 사람이 약 40%~~

천주교가 큰 고목인데...2000년 묵은 고목인데~~

거기 붙어 있는 나무이파리들은 수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설렁설렁 붙어 있다가 쬐끔만 바람이 불어도 그냥 후르르~~

다 떨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분석이 많이 나옵니다.

교리 지식이 부족하다!

성서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세례 받고 난 후에 신앙체험이 없다!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늘 미지근할 수밖에 없고 그냥 뭐든지 소극적입니다.

전례에 임하는 자세도 소극적이고~~

헌금할 때도 소극적이고~~

전교할 때도 소극적이고~~

그 책임은 교회 쪽에 크다!

맞습니다.

제가 볼 때도 80%는 교회의 영적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그냥 세례 시키고 미사만 나와라!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 키울 때 밥 세 끼만 해준다고 자식이 크는 것이 아닐 겁니다.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되고, 보살핌이 있어야 되고

이 것 저 것 세상 구경도 시키고 체험도 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난 우스개 소리로 천주교신자들이 이렇게 소극적이고

냉담자들이 많은 이유를 뭐라고 분석했느냐!

세례 받을 때 이마에 물을 너무 조금 부어서 그렇다!

침례교 같은 경우에는 아예 그냥 온 몸을 담갔다가 빼지요?

그러니까 침례교회는 냉담자가 없대요!

아무튼 세례 받을 때부터 물을 홈빡 뒤집어 써가지고~~

그런데 천주교는 이마만 이렇게 대면 그냥 물이 쭈르르 흘러내리고~~

처음 시초부터가 물세례가 시원찮았다~~ 이거예요.

 

논산훈련소에 가면 일주일에 한 번씩 세례를 줍니다.

한 번에 보통 600~700명씩 세례를 줍니다.
거기는 체제가 그래요.

그렇게 해서라도 세례라도 시켜놓으면

‘저놈이 언젠가는 천주교 신자가 되겠지!’ 하는 희망으로

세례를 줄 때 6~700명, 뭐 1000명이 넘어갈 때도 있다는데~~

한 명씩 불러가지고 代父(대부) 보고 뒤에서 잡으라.

어떻게 그래요?

세례 어떻게 주는지 아세요?

성수체 가지고...... “받아라!”

실제로 그렇게 세례 줘요.^^

성수체에다가 세례수 담아가지고 뿌리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나이다!

본명은 빨리 니들이 알아서 대,”

저도 예전에 군종신부 때 일개 대대를 한꺼번에 세례를 줘 본적이 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다 하다가는 날 새게 생겼어요.

저도 딱 한 번 성수체가지고 뿌리면서 세례를 준 적이 있어요.

그날 돼지 열 마리 이상 잡아가지고 일개 대대를 먹이고

그 대대를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위병소에서 아이 하나가

“신부님!” 하면서 차를 가로막는 거예요.

“너 오늘 세례 받아 기쁘냐?”

“그런데 신부님, 저한테는 한 방울도 안 왔어요.”

자기는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옆에 사람은 뭐라도 한 방울 튀었는데 자기는 아무리 기다려도 한 방울도

 안 튀었다는 거예요.

“저 안 받은 것 같아요. 다시 주세요.”

그래서 다시 내려서 위병소에 들어가 물 좀 달라고 그래가지고

세례수 축성해서 그냥 머리에서 주전자 가지고 발끝까지 부었어요.

“너 확실히 믿냐!”

“이제야 확실히 받은 것 같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천주교 신자들이 이렇게 뜻뜨미지근한 이유가

세례 받을 때 텀벙 담갔다 꺼내지 않아서.....

이마에만 슬쩍~~ 부니까 뭔가 시원찮다!

 

오늘 무슨 축일이죠?

주님의 세례 축일~~

사실 주님이 세례 받으실 의무가 있으셨겠어요?

주님은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받으신 거예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실제로 오늘 누구 축일이냐?

여러분들 각자가 세례 받은 날을 생각하는 그런 축일이예요.

 

그런데 많은 교우들이 세례 받았을 때를 상기하면

물로 받은 것은 분명히 기억하는데

성령으로 그날 세례 받은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날 세례 받고 기념으로 묵주 하나씩 받고, 뭐 파티 한번 하고...

그건 기억이 나는데..... 신부님이

원죄와 본죄와 잠벌까지 다 사함 받았으니 죄짓지 마시오!”

그건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그날 물만이 아니라 성령도 같이 내 안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다 새까맣게 까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우리도 세례 받고, 예수님도 물과 성령으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물이라고 하면 세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뭡니까?

정화입니다.

손 더러우면 닦죠?

씻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심판입니다. 성서에 언제 물로 심판하신 게 나옵니까?

죄로 오염된 세상을 홍수로 깨끗하게 정리하십니다.

또 모세와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난 다음에 그들을 쫓던 기마병들을

물속에다 집어넣어서 심판을 합니다.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주는 정화의 역할과

어둡고 악하고 추한 것을 깨끗이 몰아내는 심판의 역할을 합니다.

 

세 번째로 생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물 안 먹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수태되는 그 순간부터 어디에 떠다녀야 합니까?

‘양수’ 라고 하는 그 물속에 있어야만 삽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광야를 지나다가 목말라 죽겠다고 하는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바위를 치니 물이 나왔다고 하는

그런 사연이 있지요.

물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구원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신약에서도 나병환자에게 못에 가서 몸을 깨끗이 씻게 함으로써

병을 낫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분명히 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물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물이 주는 성서적인 의미는 다시 말씀드리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정화 두 번째는 심판, 세 번째는 생명입니다.

 

성령이 주는 성서적인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태움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첫 번째는 교만을 태우고/ 욕심을 태우고/

음란을 태우고/ 불의를 태워서 깨끗하게 비워야 됩니다.

 

성령의 두 번째 의미는 역시 생명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령이 물위를 빙빙 돌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물은 외부적인 것을 깨끗이 씻어주지만

성령은 내부의 더러움을 씻어줍니다.

물로 씻음으로써 외부적인 것이 깨끗해지지만

성령을 받으면 내부적인 것이 깨끗해집니다.

 

우리 신자들이 그 날 물이 부어진 것만을 기억하고

성령이 내 안을 깨끗이 씻은 것은 기억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성령에 대한 뜨거운 체험이 없기 때문에~~

미지근한 것이 아닌가!

 

우리들 역시 세례 때 물과 성령으로 태우고 씻기우고...

그래서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완고하진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은총을 주고,

그 모양은 마치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그랬습니다.

세례 받은 자는 물과 성령으로 분명히 부드럽게 은총을 받아야 됩니다.

도덕경에 보면 ‘죽은 것은 딱딱하고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다!’

딱딱한 것은 죽음의 상징이요, 부드러운 것은 살아있는 것의 상징입니다.

시체는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나면 굳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죽었다고 하는 것은 딱딱함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 같이 살 때는/ 세례 받은 자는

분명히 성령 안에 살아야 되는데~~

성령 안에 살 때는 분명히 부드럽다고 합니다.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뭘 뜻합니까?

일단은 언어가 부드럽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의 입에서는 거친 말이 안 나옵니다.

늘 남을 배려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는 표정이 부드럽습니다.

나이 칠십, 팔십이 되어도 표정만큼은 얼굴입니다.

눈을 보면  아기의 눈입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행동이 부드럽습니다.

 

성령 안에 살 때 분명히 부드러움을 갖고 살아야 되는데

언어가 부드럽고/ 표정이 부드럽고/

행동이 부드러운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느님 없이 사는 자는 늘 딱딱하고 경직이 되어 있습니다.

언어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행동도 부드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맨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그리고 하늘로부터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성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여러분들도 분명히 세례 받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똑같은 말을 들으셨을 겁니다.

‘마리아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요,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

우리 모두는 세례성사를 받고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세례 받고 10년, 20년, 30년..... 아니면 몇 년 동안에

과연 우리들은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소리를 들을 만한 마땅한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들, 딸이라고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분명히 우리는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어려움 가운데서도 즐겁게 살 줄 알아야 됩니다.

기쁘게 살 줄 알아야 됩니다.

대단한 기쁨이 아니라하더라도

생활에서 오는 작은 기쁨들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 기쁨은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라

기도할 때 기쁨을 느껴야 되고

받는 때 보다 줄 때 기쁨을 느껴야 되고

그리고 움켜쥐려고 할 때보다는 포기할 때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 첫 번째 자격입니다.

 

기쁘게 살기 위해서는 기도의 기쁨, 주는 기쁨

포기하는 기쁨을 사십시오.

 

두 번째로 너그러움이 있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받아들일 줄 알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 됩니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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