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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 어디 있느냐?” - 7.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2 조회수517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7.12 연중 제15주일
                                                
아모7,12-15 에페1,3-14 마르6,7-13

    
 
 
                                                        
 
 
“너 어디 있느냐?”
 
 


오늘 말씀 묵상 중 문득 떠오른,
창세기에서 아담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아담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묻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아담은 지은 죄로 인해 대답을 못하고 숨었지만,
하느님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한결같이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기분 좋게 대답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실 때
‘예, 여기 있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는지요.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참 나를 살고 있는가 묻는 것입니다.
 
유대인 랍비 하녹이 전해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옛날에 매우 우둔한 사람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옷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힘들어서
  밤마다 그는 거의 잠깼을 때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주저하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어느 저녁에 그는 큰 노력을 기울여 종이와 연필을 마련하고
  옷을 벗는 대로 놓은 장소를 정확히 기록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흐뭇한 마음으로 종이쪽지를 집어 읽었다.
  모자는 거기에 있었고 모자를 머리에 쓴다.
  바지는 그 자리에 있었고 바지를 입는다.
  완전히 입을 때까지 그렇게 계속 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 있지?
  그는 크게 당황하며 물었다.
 ‘이 세상 안에 나는 어디에 있나?’
  그는 찾고 또 찾았으나 헛된 탐구였다.
  그는 자신을 찾아낼 수 없었다. -
 

랍비 하녹은 자신의 견해를 덧붙입니다.

-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문제다.
  결국 이야기 속의 사람은 우둔하지 않았으니,
  그는 질문이 너무나 중요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건망증이라는 문제는 있었으나
  그가 벗어놓은 모자와 바지, 그리고 다른 옷들이
  이 세상에서의 그의 소재와 정체의 핵심으로 가게 하지 못했고
  다만 그를 외적으로 닿았을 뿐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세상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과연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을 만나십시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제자리를 발견합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참 나를 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 참 많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모두가 주님을 만남으로
참 자기를, 제자리를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 때
주님께서 불러주신 제자리에서 참 나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십시오.
 
 1독서의 아모스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만남으로 본연의 참 나인 예언자 아모스가 되지 않습니까.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무명의 아모스가 마침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받았을 때
비로소 참 나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아모스가 하느님께 붙잡히지 않았더라면
그럭저럭 참 나를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름 없이 살다가 세상을 마쳤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아모스 예언자처럼 하느님께 붙잡혀 참 나를 살 수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에페소서의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참 나를 발견하여
감사의 찬양을 바치지 않습니까?
 
복음의 별 볼일 없는 무명의 제자들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비로소 참 나로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둘씩 짝지어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이렇게 주님께 불림 받아야 비로소 참 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연인이란 참 막연합니다.
 
자기의 신원을 도대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
물음만 있고 답이 없는 경우라 끝내 자기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의 삶일 수 있습니다.
 
결코 참 나를 살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 모두 참 나를 살았던 분들이요,
이런 참 나의 성인되어 사는 게 우리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주님을 찬미할 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참 나를 발견합니다.
 
얼마나 큰 하느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지 깨닫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게 되고,
이 감사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할수록
점점 하느님의 사랑으로 정체성 또렷한 참 나가 됩니다.

이런 하느님 찬미의 기쁨으로, 행복으로 사는 자들이
바로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 이름 영원토록 찬양하리이다.”
 
매일 끊임없이 하느님 찬미 노래로
수도원 성당을 가득 채우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오늘 에페소 말씀 온통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오늘의 2독서 에페소서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마디가 무려 10회 나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나의 발견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내리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몫을 얻게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여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끊임없이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자연스런 열매가 선교입니다.
 
무집착의 초탈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하느님 찬미로 텅 비워진 그 자리에 가득 차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무아(無我)의 그 자리가 역설적으로 참 나의 진아(眞我)의 자리입니다.
 
하느님 찬미로 자기를 비우면 비울수록 참 나가 됩니다.
 
제자들은 완전 무소유로 텅 비워진 그 자리를 하느님으로 가득채웠습니다.
가장 가난하나 하느님을 소유함으로 가장 부자가 된 제자들입니다.
 
대부분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은 집착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모두가 될 때
저절로 뒤따르는 무욕과 이탈의 삶이요
햇빛에 눈 녹듯이 사라지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 회개하라고 선포하면서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다 합니다.
 
하느님의 텅 빈 통로가 된 제자들을 통해 부어지는
주님의 권능이 구마 이적을, 치유 이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처럼
완전 무소유가 현실적으로 힘들기에
무소유의 정신으로 사는 것도 좋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무욕과 이탈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진정 자유로운 참 나의 삶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바칠 때
주님을 만나고 참 나를 만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면 할수록 정체성 또렷한 참 나를 살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깨어 무소유의 정신으로,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참 나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 물으시면,
‘예, 여기 있습니다.’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우리 모두를 텅 비워 주시고
텅 비워진 그 자리를 당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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