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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9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6 조회수421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苦海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의 역할중 하나는 이러한 삶의 질곡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를 해방시켜주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이런 고통을 오늘 말씀에서는 무거운 짐으로, 멍에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삶의 질곡 속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것이 가장 피부로 느끼는 구원이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신 이유도 이런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삶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오늘 알려주신 말씀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하셨습니다다. 이 말씀은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의 고통을 해결할 방법이 없으므로 모두 나에게 와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므로 예수님을 만나러 하느님께 아직은 갈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성체를 모시고 있으므로 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는 이렇게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다.' 이런 저희 부탁에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한 말씀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고 늘 말씀하고 계셨음을 오늘에서야 이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말씀에 모두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삶의 질곡이란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첫째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영성을 쌓는다는 것은 이처럼 마음을 온유하게 하고 겸손해 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온유하게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측은지심이 충만한 그런 자비의 마음이며, 겸손해 지는 것은 남보다 윗자리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양지심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사양지심이 없기 때문에 무한경쟁을 하고 있으므로 가뜩이나 무거운 짐을 지고 뜀박질을 하고 있으니 갈수록 더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예수님의 멍에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멍에는 우리들의 멍에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십자가의 멍에입니다. 또 아무나 질 수 있는 멍에가 아니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질 수 있는 멍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그에 앞서 마음이 먼저 동해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마음이 동해서 하는 일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결코 힘들지 않으므로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가르침을 다시 정리하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측은지심과 사양지심을 길러야 하고,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실천할 수 있으며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가르침은 이러한 가르침에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는 말씀을 교회에만 나오면 하느님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준다는 뜻으로 왜곡하여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이들이 있으므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개탄스러운 모습이 비단 이 땅의 우리 그리스도교의 모습만이라면 개탄하지도 않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기에 개탄스럽습니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국회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 통법부가 되었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위임한 권력은 소수 사람만을 위한 권력이 되었고,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새로운 권력이 되었고, 포괄적 뇌물죄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검찰은 뻔뻔하게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는 스폰서로 생각하는 이런 현실이 개탄스럽고, 돈 없으면 그나마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 도시영세민의 참담한 현실이 개탄스럽고, 뭇 생명을 죽이고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死大江 개발은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개탄스럽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매일매일 회심하여 마음의 평화를 이루겠습니다.
허나 우리를 개탄스럽게 하여 우리가 짊어져야 할 멍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절히 기도하오니 성령으로 응답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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