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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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7-17 | 조회수38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복음 선정을 각 나라의 경축일 등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각국의 교회가 복음 선정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교회는 제헌절에 적합한 복음으로 오늘 복음을 선정할 것 같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복음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하신 이 말씀보다 더 적절한 말씀은 없으므로 오늘 복음 선정은 제헌절인 오늘과 우연의 일치라 하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우연의 일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인류에 공헌한 최대의 업적을 꼽으라면 저는 서슴없이 안식일을 꼽겠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다른 종교에도 모두 다 있으므로 이를 자랑할 수 없으나 안식일이 없었다면, 일주일에 하루씩 쉬는 제도가 없었다면 생각만 하여도 끔직합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엄청난 공헌을 하였으므로 비그리스도 교인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본래 취지도 노예나 종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사람을 위한 훌륭한 제도였으나 그 취지가 퇴색하여 오늘 복음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 복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는 말씀이고, 두 번째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으로 이 말씀은 성경 말씀을 인용한 말씀으로 느껴지지만 구약에는 자비에 관한 많은 말씀이 있으므로 구약의 어느 말씀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인지는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각기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람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그 무엇도 없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 어떤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면 이단 중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이단으로 취급당하므로 그 누구도 이에 대하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침묵하여야 합니다. 저 역시 이에 대하여는 그 어떤 이의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정서는 이런 생각조차 죄악시 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로 알려 주셨으며 우리 교회에서는 많은 기도 중에서 '주님의 기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므로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알려주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이 다르고, 교회의 가르침과 주님의 기도와 또 다르므로 저는 이런 점 등이 가장 혼란스럽지만 복음을 묵상함에 있어서는 교회의 가르침이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복음을 묵상하여야만 복음 말씀의 참뜻을 제대로 묵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느님께 경배하는 날로 율법으로 정하고 있었으며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며 경배하는 장소가 성전이고 율법은 하느님의 뜻이므로 절대적으로 준수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의 주인도, 안식일의 주인도, 모든 율법의 주인도 모두 하느님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하시며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함에 있어서 우리 교회의 가르침대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생각하여 묵상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므로 더 이상 묵상할 필요가 없으므로 오늘 말씀에 담긴 소중한 가르침을 묵상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르침은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도 성전보다 더 소중하며 안식일의 주인이므로 사람보다 더 소중한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고 율법도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선언을 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님'은 속량을 말씀하셨다면 오늘 말씀은 이제는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으므로 율법의 지배를 받는 종의 근성에서 벗어나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 알려주고 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이 두 가르침은 결코 다를 수 없으므로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人乃天사상은 이천년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이보다 더 간결하게 복음 말씀의 정곡을 찌른 말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이러한 우리 선조를 지닌 우리들은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가능했던 것은 천주학을 검토하며 우리 교회의 율법인 교리에서 자유롭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내천사상에 의하면, 우리 그리스도교가 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리를 회복하자는 것이며, 우리 그리스도교가 생명을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며, 우리 그리스도교가 사회 정의를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신을 섬기기 위해서 용산에서 귀한 생명들을 죽였어도 침묵하고, 물신을 섬기기 위해서 도시서민의 삶터인 무수히 많은 성전을 철거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박탈하여도 침묵하였던 우리 교회가 성당을 철거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여 그 禍가 우리 성당에 까지 미쳤다 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 한 목소리를 내야하며 그렇지 않다면 교회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음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 공동체이며, 우리 교회는 사회 공동체의 바른 구성원을 배출하여 하느님의 성전인 사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있고, 이 땅의 지도자들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오늘 제헌절을 맞이하여 다른 것은 몰라도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 하나만이라도 기억하고 있기를, 그래야 다시는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신 말씀이 지켜질 수 있음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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