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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껍데기를 벗고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7 조회수1,525 추천수14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5주간 금요일 - 껍데기를 벗고

 

저의 동기 신부 하나가 랍스터를 단 한 번 먹어보고 그 이후엔 절대 먹지 않는 사연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신부가 부자동네 본당에서 제 2 보좌를 할 때였습니다. 그 신부의 영명축일을 맞이해서 본당 청년들이 신부님께 식사대접을 해 드리겠다고 청했다고 합니다. 그 신부는 학생들이 돈이 어디 있느냐며 거절을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선배 신부인 제 1 보좌 신부님을 통해 청년들에게 잘 좀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제 1 보좌 신부님은 신부님이 청년들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니 이해하라고 청년들을 설득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그 신부님은 워낙 럭셔리해서 니들 돈 많이 들걸? 그 신부님은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 아니면 안 가.”라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워낙 잘 사는 집 아이들이라 호텔 레스토랑에 랍스터를 예약 해 놓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신부님은 청년들을 따라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자마자 주눅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개씩 놓여있는 스푼과 나이프, 포크 등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몰랐고, 또 랍스터가 나왔는데 함께 주는 위에는 서로 길이가 다른 가위와 뱀 혀처럼 생긴 꼬챙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 청년들을 보며 따라하려고 했는데 청년들은 또 신부님이 먼저 드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청년들이 포도주를 시키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 어떤 포도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어? 그냥 다 좋아~”라고 말을 흘렸고 청년들은 자신들이 고른 포도주를 시켰습니다. 웨이터는 포도주를 따고 신부님에게 “테이스팅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 어~ 그냥 주세요. 좋은 포도주 같은데...”라고 하였고 청년들은 급기야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대며 웃기 시작하였습니다. 테이스팅은 포도주 숙성동안 공기가 들어가서 맛이 변하지 않았는지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그런 긴장 속에 식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라면부터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습니다.

“내가 아닌데 그런 척 하려니까 정말 힘들더라. 그냥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 되는데.”

맞습니다. 본질보다는 형식에 주위를 더 기울이며 살면 인생을 즐기는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어떤 포도주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포도주는 마시고 취하면 그만입니다.”

 

정말 자신을 감추고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은 자신을 지옥에서 살게 합니다. 특별히 자신을 감추고 잘 보이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격식을 차리는 것입니다. 상류사회에서 쓰는 언어가 따로 있고 그 사람들이 가는 쇼핑몰이나 레스토랑도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감추는 가식적인 것을 때에는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운 감옥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긁어 비벼서 먹자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기고 있다고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 따집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며 법의 본질이 중요하지 겉모양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고 또 상황에 따라서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법도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예로, 다윗이 도망 다닐 때 들어가서는 안 될 곳에 들어가고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라고 하십니다. 성전은 바로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만 계시다면 그 성전의 모양이 어떻든 성전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성전은 그 모양이 아무리 아름답고 웅장하더라도 돌무더기에 불과합니다. 성체가 없고 미사가 드려지지 않는 성전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성전의 겉모양이 바로 법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은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이고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만 모시고 있으면 그 성전의 모양은 변형되어도 괜찮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그저 가식적으로 보이는 면만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를 저주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예루살렘의 위대한 성전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 수 없이 복잡한 외형 안에 본질인 하느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인사 잘 한 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인사는 그 어른들을 존경해서 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칭찬해주니 만나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물론 인사하는 사람을 다 그만큼 존경하고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보다는 어른들을 더 존경합니다. 하느님은 인사하는 겉모양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진심을 봅니다.

공자는 덕의 최고의 경지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것들에 그 내용을 채워가다 보면 그 외형과 내형이 같아지는 경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도 더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니라 안의 내용인 것입니다. 겉으로 그런 척 하며 살면서 스스로도 자신이 그런 줄 알고 착각하며 사는 것보다, 법도에 어긋나더라도 껍데기를 벗고 솔직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본질을 완성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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