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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체께 대한 흠숭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0 조회수478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체께 대한 흠숭


 

“가톨릭교회는 성체성사에 바쳐야 할 이 흠숭예배를 미사 중에는
물론이고 미사가 끝난 후에도 실천하여 왔다.”
공동체의 성찬례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에서부터 성체성사의
빵의 형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흠숭까지의 행보가 오늘날
어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이 행보는 대다수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그리고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가톨릭의 특별한 형태로 분류된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성장한 이러한 신심의 형태를

포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우리는 교회 안에서 쇄신을 활발하게 한 모든 것들이

성체흠숭과 상당한 관계가 있었음을 주장한다.
개인적인 많은 증언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나는 단지 유대교의 개종자 미르얌 프라거 수녀와 얼마 전 사망한
쌍트 가브리엘 수도원의 분도회 수녀의 증언을 참고로 제시한다.

미르얌 수녀는 그리스도를 믿기 위한 세례에 대한 부르심을

작은 성당에서 경험하였는데, 거기서 즉시 성사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앙드레 프로싸르가 파리의 울름에 있는

지속적인 흠숭을 위한 작은 성당을 우연히

 방문했을 때 발생한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한 두 가지 반증은 특히 성체흠숭에 반대되는 것이다.
주님은 “받아먹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과 이러한 것은 늦게

형성된 신심의 형태라는 것이다.
후자의 반증에 대하여 오늘날 전례와 신심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은 먼저 점차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못 형성된 것도 아니며 과장된 것도 아님에 틀림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주님의 성체 성사적 현존에 대한 신앙의 심화는

성체공경의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게 했다.
즉 성체거동에서 감실에 대한 강조와 성체현시,

성체조배까지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된 심화는

잘못된 발전이 아니다.

성체흠숭에 대한 가장 심오한 근거는 성사의 형상 그 자체 안에 있다.
확실히 빵은 먹기 위한 것이며,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
에게 권고하시길, 성사 속에서 빵이 당신의 살이 된다고 하셨다.
빵의 형상이 의미하는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한다면 흠숭은

그 충분한 성체성사의 의미를 가진다.

가파르나움에서 성체성사의 말씀에서 주님 친히 당신을

‘생명의 빵’(요한 6,35)이라고 하셨다.
그분의 모든 삶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이며 이 빵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에, 그 안에서 당신 스스로를 주신다.

빵의 형상 안에 예수님의 현존은 당신의 사명의

깊은 의미를 나타낸다.
파견이 우리의 삶에 새겨진다.
즉 그분처럼 세상의 생명을 위해

빵이 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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