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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0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1 조회수414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46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3개월 전에 우리나라에는 아직 진출하지 않은 프랑스 봉쇄수녀원인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녀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수녀원에 입소하기 위해서 부모님 몰래 프랑스로 건너가서 입소하였다 하였으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그 수녀원 최초의 수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일시 귀국하여 한시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 수녀님에게 국내에도 수도원이 많이 있는데 프랑스 봉쇄수녀원을 선택하신 이유에 대하여 여쭤봤습니다. 수녀님의 대답은 제주도에 있는 수도원에 입소하려고 하였으나 수녀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이 찾아와서 극구 만류하므로 국내에서는 도저히 수도원생활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외국 봉쇄수녀원을 선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국내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수도원에 입소하기 위하여 프랑스로 야반도주를 하였다니 그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오늘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신 이유도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고 다니시므로 걱정이 되어 찾아 오셨을 것입니다. 세속을 떠나 佛門에 드는 것을 출가라 합니다. 우리 성직자분들과 수도자들 또한 출가한 분들입니다. 출가는 모든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따르겠다는 마음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세속적 가치와는 전혀 다르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세속적 가치를 먼저 버려야 하고, 세속적 가치 중에서도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의 으뜸은 아마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인색한 이유는 그 재물을 자식들에게 물러주기 위해서가 대부분 일 것입니다. 이번 주 주보에 의하면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사순 시기는 40일에 불과하지만 내 자식의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100일 기도하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신 것은 예수님이 걱정되어서 찾아 오셨지만 이런 걱정은 모두 혈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혈연에 연연하면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으므로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해서는 육친의 관계에 연연하는 세속적인 가치관은 초월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잘못 묵상하면 가족도 버리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하느님의 아들, 딸은 이웃을 사랑하므로 가족 또한 사랑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38)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오늘 복음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출가자의 자세를 알려주고 계시며, 저희에게는 혈연을 뛰어넘는 차별 없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혈연처럼 소중한 인연은 없습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파기할 수 없는 천륜이므로 혈연을 경시하는 것은 천륜을 어기는 것이므로 오늘 성모님을 박대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 성경 말씀은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음을 오늘 또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해는 기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개신교에서 우리 가톨릭을 공격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公私를 구별하라는 말씀으로도 묵상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행위를 함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이런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에 치우친 행위입니다. 공적인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이며 자신의 뜻을 실행하는 행위가 아님으로 오늘 말씀과도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우리는 공생활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공적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행위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크리스찬 공직자라면 최소한 이런 사실만큼은 알고 있어야 크리스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지도자들은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우선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능력과 도덕성을 기준으로 인재를 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를 중용하고, 자신의 주위에서만 인재를 중용하는 등 사적인 인연을 중시하고 있으므로 고위 공직자의 인사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허탈감만 생기고 있으며 정책수립도 민심이 천심이라는 사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으므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왔으므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습니다. 이를 모르고 혈연, 학연, 지연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라는 말씀으로, 이런 세속적인 인연보다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관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를 모르고 혈연, 학연, 지연 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교회 인연까지 더 추가되고 있습니다.
사적인 인연은 사적으로 끝내고
공적 관계는 하느님의 뜻만을 생각하여야 함을 더불어 알려주셨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만을 생각하여 사랑받는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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