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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0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4 조회수41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다시 설명해 주신 말씀으로 사람 됨됨이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를 더 줄여서 기억하려고 합니다. 밭에 씨를 뿌리면 새싹이 돋아나고 무성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단순한 이치 속에 오늘 네 가지 유형의 말씀이 모두 다 함축되어 있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밭에 씨를 뿌리면 발아하여야 하는데 발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첫 번째 사람의 경우일 것이며, 두 번째 경우의 사람은 발아는 하여 새싹이 돋아났으나 곧 말라 죽은 경우로 묵상하고 있으며, 세 번째 경우는 무성하게 자라기는 하였으나 가라지처럼 알곡을 맺지 못하는 경우이며, 마지막 네 번째 경우는 풍성한 알곡을 맺어서 하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경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씨가 알곡이 되는 이런 과정이 자연의 질서이고 이런 자연의 질서가 바로 진리입니다. 이런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나면 그 생명체는 자연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거역하면 우리 인간은 도태될 수밖에 없으므로 멸망에 이를 것이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 그 종은 영원할 것이므로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그런 사회가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사실조차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은 씨가 발아조차 하지 못하고 말라 죽은 경우라 할 것입니다. 아직도 하느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믿는 사람들 특히 비나이다! 믿나이다! 하며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발아조차 하지 못하고 땅 속에서 부패한 경우로 묵상하고 있으며, 새싹으로 돋아는 났으나 곧 말라 죽은 사람은 이런 이치는 알고 있으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간 경우이며, 잎만 무성한 사람은 하늘 나라가 좋은 것은 알지만 말씀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교리 지식으로 무장하여 자신을 들어내 보이려는 사람일 것이며,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알곡을 맺는 마지막 사람만이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일꾼이라 할 것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이유는 알곡을 얻기 위한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하늘 나라의 일꾼이 되는데 있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내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하지 않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가라지밖에는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알곡을 맺는데 방해만 하고 있으므로 차라리 씨가 발아조차 하지 못한 경우보다 더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시장하신 예수님께서 마침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으나 잎사귀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마태 21,19)고 말씀하시자 그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 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이 생각하였던 무화과가 열리지 않았다고 저주하여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한 이런 일은 자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차라리 씨가 발아조차 하지 못한 경우보다 더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는 오늘 묵상 속에 이에 대한 답이 있을 것입니다.   

참된 일꾼을 박해하는 사람은 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는 가라지들임을 오늘 묵상을 통해서 더 확연해 지는 것 같습니다. 비 그리스도인이지만 하늘 나라 일꾼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가라지보다는 훨씬 더 나은 하늘 나라의 일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잎만 무성한 가라지들은 자신을 들어내 보이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사람이 하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것을 질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가라지들의 속성일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하늘 나라로 가꾸는데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반성하여야 할 것이고, 우리 교회는 하늘 나라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는지, 아니면 교회 일꾼이 필요하여 또는 교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원이 필요하여 신자들을 확보하려고 하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마태 13,37-39) 고 하였습니다. "밭은 세상이다."하신 말씀을 특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러함에도 우리 신앙이 어떻게 세상일을 등지고 교회 안에서만 머물 수 있는지,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웬 가라지가 우후죽순처럼 무성하게 생겨나서 하늘 나라를 만드는데 방해만 하고 있으므로 갈수록 더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가리지를 뿌린 사람들에게“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하신 말씀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은 그런 불편한 마음을 삭히지 못하고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스스로 씨가 되시어 세상의 밭에 씨를 뿌리셨습니다.
하지만 뿌린 씨가 알곡이 되지 못하고 가라지만 무성한 밭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눈먼 장님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갈수록 가라지만 더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밝은 눈을 주시옵고
저희 또한 알곡이 되어 하늘 나라의 일꾼이 되고자 기도하오니
부디, 이런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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