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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때라야 예수님의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까?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6 조회수380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느 때라야 예수님의 시험에 통과할까? -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요한6,5-15)

 

전국 일주 여행을 떠난 어느 일행이 자동차를 몰다가 그만 외딴 도로에서 고장이 났습니다. 지나가는 차를 기다렸지만 외진 곳이라 어떤 차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차를 밀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밀고 또 밀었습니다. 도중에 주유소도 나오고 정비소도 나왔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대로 계속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밀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쉬면서 차가 왜 고장 났는지 보닛이라도 열고 살펴보거나, 정 모르겠으면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고쳤다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냥 기술자를 불러다가 점화플러그를 갈거나 퓨즈를 갈아 끼웠다면 차가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집을 피우며 계속 밀고 또 밀었습니다.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어리석은 일을 누가 저지르겠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평소에 저지르는 우리 행동이 이와 같이 어리석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와 안드레아에게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생각도 사실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하겠는지 묻는 것입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는 예수님의 시험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능력으로 빵을 마련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자기가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빵과 자신만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주님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빵이 부족하다는 현실만 보았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적이 대부분입니다. 생활 중에 곤란과 무력감을 겪으면 그 문제와 나만이 눈에 보일뿐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리고 걱정만 하거나 아니면 어리석은 여행자들처럼 목적지까지 자동차를 밀고 갈 생각만 합니다. 타고가야 할 자동차를 밀고 끄느냐 온힘을 소비합니다. 애써 목적지에 다다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목적지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습니다. 도중에 샛길로 빠지고 맙니다. 

빵을 많게 하시는 기적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빵을 많게 하시는 것에만 염두에 둡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셨을까만 의구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상야릇한 해석 방법이 나옵니다. 심지어 빵의 기적을 상징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조차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 저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독특하게 질문하시고 시험하시는 예수님을 그립니다. 빵을 많게 하시는 그분의 행위에만 눈길을 두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어떻게 보다는 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찾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표징 처음에 파스카 축제를 언급합니다. 그 의도도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원하셨듯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출애굽 사건이 실현되었고 그 과정 중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으로서 모든 어려움이 해소되었듯이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현존을 떠올리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만 떠올리니 모든 일이 불가능하게만 생각되는 것입니다.

차가 고장 나면 전문가에게 맡겨 고장 난 곳을 수리하고 몰아야 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실상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취하는 언행은 이와 똑같이 어리석습니다. 전문가에 의탁할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엇이든 자신이 해결하려 듭니다. 자기 생각에 맞아야 옳다고 여기고 자기가 이해하여야 순순히 따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통찰하고 깨달으려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무엇에나 허둥지둥 덤벼들기만 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려 덤비다가 곧 자빠져버립니다. 

내 생각 내 능력보다 주님의 현존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요한저자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저는 언제나 주님의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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