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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0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8 조회수491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7주간 화요일]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6-43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가라지 비유에 대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따로 설명해 주신 복음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이유는 더 많은 알곡을 수확하기 위해서입니다. 수확할 때에 알곡을 맺지 못한 가라지는 쓸모가 없어 불에 태울 것이므로 이런 이치는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되므로 의로움을 행하고 불의를 멀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우리는 세상의 밭에 뿌려진 씨앗입니다. 좋은 씨앗은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며 불량 씨앗은 가라지의 신세가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수확할 때에 결정되므로 수확이 바로 심판이고 종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판할 때에는 선과 의로움을 행하고, 악과 불의를 행한 자를 나눠서 오른편의 양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축복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왼편의 염소들에게는 저주의 불 속으로 보내서 영원한 벌을 받게 할 것이다 (마태 25, 31-46)하였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선악의 구분도 모호하고 특히 의로움과 불의는 더 더욱 모호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또 무엇이 의로움이고 불의인지를 판단조차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모두가 나와 다르면 악이고 불의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저 또한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도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느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어느 신부님은 또 다르게 말씀하시므로 우리 신자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접한 저희들은 교리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도리를 따를 것인지에 대하여 신부님들 조차 생각이 다르므로, 예수님은 오늘도 선과 의로움을 행하고 악과 불의를 멀리하라고 가르침을 주고 계시지만 요즘은 선악의 구분도, 의로움과 불의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교회의 가르침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으로 판단하라고 합니다. 그 하느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고위 성직자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입니까? 하느님도 침묵하고 계시므로 우리 교회도 매사에 침묵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까? 선악의 구분조차도, 의로움과 불의의 구분조차도 하지 못하므로 매사에 침묵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선과 의로움을 세상의 밭에 뿌려야 한다고 하셨으나 우리 교회는 세상 일에는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하므로 어느 가르침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불의한 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불의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보다 더 우선하므로 선악의 구분도, 의인과 불의한 자의 구분도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매사를 오로지 말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매사를 말씀으로 판단하면 교회 내에서 두 목소리가 나올 수 없으며 교회도 지금처럼 정치권의 눈치나 보며 마냥 침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발전하는 만큼 그에 따른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우리 교회도 꾸준히 진화해야합니다. 그럼에도 변화를 가장 거부하는 곳이 우리 교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생명체나 이런 진화가 멈춰버리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이론'입니다. 자연에 적응하는 생명체는 살아남는 것이며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결코 수용할 수 없으므로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법정으로 비화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교의 과학시간에 진화론만 가르치고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하여 가르치지 않고 있으므로 이에 반발하여 창조과학으로, 즉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모든 생명체는 지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지적설계이론을 과학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미국의 어느 소도시의 교육위원회가 이를 수용하였으나 교사들이 반발하여 법정으로 비화된 사건입니다. 연방판사는 교사들의 손을 들어 줬지만 지금도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1859년에 발표되었으므로 정확히 150년 전 일입니다. 종의 기원을 발표하며 우리 교회의 중압감 때문에 살인을 자백하는 심정이라고 고백하였으며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다윈의 초상화에는 'If you had an idea that was going to outrage society, would you keep it to yourself?' (만약 당신에게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겠는가?)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복음 선포도 이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서 멸망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불의한 자는 귀를 기우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내 생전에는 심판의 날이 오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내세적 관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묵상하고 있지만 이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늘 나라의 일꾼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이천년 전의 이런 방식으로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으므로 감동을 심어줘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사회에 감동을 심어주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가? 에 대하여 늘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실망스러운 사건으로는 우리 가톨릭 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동성고등학교와 계성여고를 자립형 사립학교인 자사고로 신청하였으며 동성고등학교만 신청이 받아진 것 같습니다. 자사고에 다니고 싶어도 과중한 학비 때문에 돈이 없으면 다닐 수 없으므로 소위 귀족학교라는 지탄을 받고 있음에도 우리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가 이에 앞장 선 것은 소외된 이웃을 먼저 생각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무색하기만 하여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저희가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고 있으므로 이 무슨 업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참되게 알려주고 실천하는 우리 교회가 되어 우리 교회를 찾는 발걸음이 더 늘어나기를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가르침도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 우리 교회의 모습이 다르지 않으므로 더욱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목자가 없는 저희 양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늘 나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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