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의 복음과 오늘의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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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광자 | 작성일2009-07-29 | 조회수56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09년 7월 29일 수요일[(백) 성녀 마르타 기념일]
+성부와 성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한 복음 11장에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타 성녀는 그 라자로의 동생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에 자주 머무르셨고,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의 일행을 정성으로 영접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세 분은 오늘날의 프랑스인 갈리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목욕탕에 갔습니다. 탕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때 어떤 아이가 물었습니다. “안 뜨거우세요?” “뜨겁단다.” “그런데 참는 거예요?” “그래, 참는단다.” “어떻게 참으세요?” “살다 보면 이보다 더한 것도 참아야 한단다. 이런 것 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앉아서 참아 내는 거야. 너도 한번 해 보렴.” 하지만 아이는 아는 듯 모르는 듯 호기심의 미소만 띠고 머뭇거립니다.
참는 것을 어찌 강요할 수 있을는지요? 살다 보면 ‘참아야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기에 인내가 몸에 뱁니다. 사랑 역시 ‘참는 행위’입니다. 사랑하기에 참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참는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참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투정과 협박이 뒤섞인 청원입니다. 하지만 마르타의 기도를 주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그녀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인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엄청난 협박성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들어주십니다. 믿는 이들은 언제나 어린이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른의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내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는 행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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