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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보다 훨씬 더 훌륭하신 분이 돌보고 계십니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9 조회수1,144 추천수4 반대(0) 신고
나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젊은 친척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18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성년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모든 죽음은 견디기 어렵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위로하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제는 살아 볼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가족에게 위로하려고 부활이나 영원한 생명을 말하면 공허하게 들리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만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애가 저자가 썼듯이 땅에 입을 대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조금 지나 안정을 조금 찾은 후 부활이나 충만한 삶을 말하면 그제서야 귀에 들리게 된다.
 
 장례식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더듬거리며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이제야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당신과 고통을 같이 하겠습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뿐일 것이다.
그러나 땅에 묻으려고 하는 사람과의 관계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특히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에
받는 충격과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죄의식을 느끼고 두려워하게 된다.
그 사람은 죽었는데 자신은 계속 살아 있어서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더욱더 고통스러운 것은 죽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미처 화해하지 못한 등의 미진함을 느끼고 죄의식을 갖는 것이다.
모든 관계에는 고통스러운 미진함이 있게 마련이지만 장례식에서 가장 괴로워하게 된다.
따라서 아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텐데,
더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했을 텐데, 더 이해하고 화해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아쉬움이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이 보인다.
 
 죽은 사람이 특히 젊은 사람이면 이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도 느끼게 된다.
인간은 미완성이라는 심정과 의외라는 생각과 심지어는 잔인함을 느낀다.
“그는 너무 젊어서 도자기처럼 아직도 깨어질 것만 같고,
생을 포기하기에는 이르고, 집과 친구들을 떠나게 되고,
그가 미쳐 준비하지 못했던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집을 처음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처럼 죽은 젊은이를 걱정하게 된다.
또 너무나 정이 들어서 아직도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헤어지지 못할 것 같고,
새로이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이 두렵고, 마지막 심판을 받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젊은이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 들이기가 어렵고 이해를 하지 못한다.
이러한 죽음에 직면하고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유일한 희망의 말은
그는 우리보다 더 좋은 사람에게 가 있습니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믿음이 깊은 말들로, 이 젊은이에게 생명을 주시고,
상냥한 어머니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주시고,
풍요로움과 활기에 찬 젊음을 주신 하느님께서
그 생명을 완전하게 해주시고 그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한다.
 
 죽음을 이해하려 할 때에는 탄생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손에서 돌보아지게 된다.
어머니가 온갖 정성을 다하고 주의를 기울여서 키워 주어서 망정이지
아기는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어머니 때문에 모든 것이 변한다.
출생 시에 몇 가지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다.
어머니가 이 출생시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정성과 인내와 상냥함으로 깨끗이 없애 준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돌봄으로 출생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아무 탈 없이 살게 되지만
사실 깨달음의 가시밭길이다.
 
 하느님은 이 땅의 어머니보다 훨씬 더 부드러우시고,
훨씬 더 사랑이 많으시고, 훨씬 더 이해심이 많으시다.
우리들이 탄생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까지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꼭 같다.
어머니가 없으면 트라우마를 감당을 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린애였을 때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상냥하고 인내심이 많았던 것처럼
우리가 죽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이상으로 해주신다.
죽었을 때 우리를 받아주는 그 손은 이 세상의 거친 손이 아니다.
거기서 우리를 껴안아 주시는 분께서는 우리들에게 버거운 일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들을 마치 어린애 같이 부드럽게 상냥하게 이해하고 잘 달래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하느님의 팔에 안긴다는 것은
태어나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정성껏 돌보아지는 그런 경험일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항상 죄스럽게 느끼게 되고 두렵게 된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이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을 맛보게 할 것이다. 이렇게 떠나 보내면서 가장 큰 걱정을 잊을 수가 있게 된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우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
새로운 환경을 맞이 하게 되었으므로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죽어서 우리를 떠날 때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자상한 사람께서 돌보고 계신다.”
(롤하이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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