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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10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31 조회수338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평생 동정이신 성모님'의 우리 교리와는 다른 말씀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며 네 형제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고 누이들이라 하였으므로 누이도 최소한 두 분이상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모님의 평생 동정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 등장하는 형제들과 누이들은 사촌이거나 이복형제로 또는 형제처럼 가까운 이웃으로 이 문제를 풀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톨릭은 성모님 공경교리와 관련하여 개신교로 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마리아교로 공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우리 내부에서도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시하는 신심단체들이 있으므로 신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모님 공경교리는 동정에서 평생 동정으로 더 나아가 천상모후로 까지 발전하였으므로 과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의 실천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신앙으로 발전한 탓에 성모님의 신심도 더불어 발전한 것 같습니다.

종교적 믿음과 실체적 사실과는 반듯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종교적 믿음을 실제 사실로 믿는다면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며 오히려 맹신자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 주위에서 수시로 접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다니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너무 믿음을 강조하였기에 종교적 믿음과 실제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논쟁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교리가 생겨날 것을 복음서 기자가 미리 알았더라면 오늘 복음은 복음서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무심코 넘어갈 수 없는 말씀은 예수님의 신원에 관하여 예수님께서 당신을 "예언자"로 직접 말씀하신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예언자로 생각하면 대죄를 짓는 사람처럼 가진 몰매를 감수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하며 고향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궁금증은 저 역시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므로 예수님의 지혜는 하느님으로 부터 물러 받은 것으로 믿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하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많은 지혜를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에서 그 많은 지혜를 터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고 자연을 하느님으로 생각하면 하느님으로 부터 전수받은 것이 될 것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예언자는 예수님처럼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명문 대갓집에서 태어난 예언자라면  엄청난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예언자는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예언자를 말씀하고 있으며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은 그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음에도 출신성분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출신성분은 요즘은 지역, 학벌 등이 주요 출신성분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도 이런 폐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괄시 받은 모습은 요한복음에서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 46)하였으며, 최고의회 의원들이 니코데모에게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하며 공격한 사실 등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긋지긋한 출신성분 때문에 마태오와 루카기자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을 기록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지역주의 망국병입니다. 우리도 이런 점은 정말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집안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의를 생각하기 때문에 혈연을 중시하지 않은 이유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고 표현한 것은 요즘 시각에서는 예수님이 옹졸한 분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으므로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하느님이, 예수님이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우리가 기적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노력 없이는 그 어떤 기적도 일어 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서 이 땅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기적을 만드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하늘 나라에 대한 13장의 말씀은 마무리하고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예언자이어서 고향에서 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이기 때문에 고향에서 괄시를 받았습니다.
저희도 이런 차별적인 요소인 망국병인 지역주의와 학벌주의 때문에
하늘 나라 건설을 더욱 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을 믿고 이를 실천하여야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에도
기도만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으로 믿는 기복신앙 때문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잊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는 깨우침의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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