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들의 자화상 | |||
---|---|---|---|---|
작성자박세림 | 작성일2009-08-01 | 조회수20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찬미 예수님 자신이 한 번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하여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구원의 선포자였던 요한 세례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허망한 짓을 하였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지은 죄가 두려웠고 그러한 죄의 공포속에서 살았으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소식만을 듣고도 요한이 되 살아났다고 믿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지않았던가요? 아마도, 바리사이는 ''부활''을 믿지 않았고, 사두가이들만이 부활을 믿었다고 하지요. 암튼, 당시 헤로데가 바리사이나 사두가이파가 아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이 부활하였다고 믿었으니 그 지난 세월을 얼마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살았겠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 "...하루를 살아도 행복 할 수 있다면..." 어느 노랫가사이지요.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세례자 요한을 살해하도록 명령하였던 헤로데... 과연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먹는것은 제대로 먹었을까요. 대저택에서 살고있어도, 고급 승용차에 타고있어도 ''죄''의 굴레속에서 살면 누구나 헤로데와 별반 다른것이 없겠지요. 철부지 아이들의 허망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과연 당시 헤로데만의 실수였을까요? 실로 지금 이 시대에는 그러한 실수를 하고 있는 부모들은 없을까요? 지금 한국의 경제난과 문화적 퇴폐성을 과연 산업사회의 잘못이라고만 돌릴 수 있을까요?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단지 사회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중에서 나의 실수는 없었을까요? 이천년전의 헤로데와 지금의 내가 과연 다르다면 어떤것이 무엇이 다를까를 묵상해 봅니다.
자신에게는 물론 이웃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 솔직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바로 행복하십시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와 함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