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11 | |||
---|---|---|---|---|
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8-02 | 조회수44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8주일]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제 오후에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을 다녀왔습니다. 그 곳은 노사분규의 현장이 아니라 한여름의 폭염 찜통에 수백 명을 몰아넣고 생명수마저 차단하여 고사시키고 있는 살인 현장과 다름없었으며, 가족들이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 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이 땅의 우리 이웃이 그 고통을 당하고 있으므로 이런 비 인도주의적인 행위가 이 땅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더러 너무나 야만적인 만행이어서 목불인견의 참담한 현장이었습니다. 살려고 올라갔던 용산의 망루는 화염에 휩싸인 죽음의 망루가 되었고, 살려고 공장 안으로 들어간 그곳은 폭염으로 말라 죽이는 고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찜통 속에서 목말라하며 물을 달라고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오늘은“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십니다. 하오나, 주님! 저희보다 더 애타게 생명수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사오니 주님을 믿는 저희 모두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그들에게도 생명수가 흘러가는 오늘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부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아멘! 오늘 복음은 어느 한 말씀도 소홀히 할 말씀이 없으므로 말씀을 이해하는데 급급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를 알려주고 계시며,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양 날개 중에서 한쪽 날개를 알려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을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며 이런 관점을 중시한 복음서가 공관복음서로,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이고 요한복음서는 이런 관점을 중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를 중시하는 사람은 사회정의 구현을 중시할 것이며, 요한 복음서를 중시하는 사람은 개인 영성을 중시할 것 같습니다. 이런 두 가지 관점은 새의 좌우 날개처럼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그 경중을 따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저희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기 위해서 즉, 믿어서 복 받기 위한 그런 기복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므로 지금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정확히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오병이어의 표징은 영원한 생명에 관한 표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빵을 먹어야하므로 말씀을 배불리 먹여줬다는 말씀입니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아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며 하느님께 인정을 받은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를 깨달아 이를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영원하시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원하므로 영원한 생명은 곧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말씀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 질문한 군중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저희도 미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으로 엄청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사람의 구실을 하기도 힘들고 힘 드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일' 을 하려고 하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믿나이다’를 신경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믿고 말씀은 곧 생명의 빵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며 믿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결과에 있어서는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다" 하셨으며 이어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보내신 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진리의 삶을 살아서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은 이러한 삶을 사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뿐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므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이 있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광야에서 너희에게 만나를 먹여주었지만 그 빵은 생명의 빵이 아니라는 말씀이고,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고 내가 알려준 복음이 바로 생명의 빵이라는 말씀입니다. 현실참여보다는 영성을 중시하는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은 생명의 빵인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요한복음서의 말씀으로 국한한다 하더라도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요한 7,7) 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하므로 예언자의 소명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승천하시며 베드로 사도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 21,15)하신 말씀을 실천하려면 핍박받는 어린 양들 돌봐야 하므로 현실참여와 영성신앙은 결국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
||||